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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점보다 장점 보던 시선은 어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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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닥터 소의 심심 클리닉
Q 양가 반대 무릅쓴 결혼생활, 무책임한 남편이 힘들어요
저희는 결혼 4년차 연상연하 커플입니다. 저(41)는 학원강사, 남편(36)은 건축회사 과장이에요. 교통편이 좋지 않아 현재 보름부부를 하고 있어요. 양가 부모님의 반대도 무릅쓰고 성당에서 관면혼인 받았고요. 물론 양가 부모님은 참석하지 않으셨죠. 지금까지도 시댁과는 전혀 연락 없이 삽니다.
결혼 첫해 아이가 생겼지만 유산되고 2년 동안 임신이 되지 않아 고민이 많습니다. 문제는 남편의 사소한 거짓말과 술, 그리고 힘든 상황에 몰리면 지금의 결혼생활을 정리하려고 하는 태도입니다. 연애시절 남편은 술을 잘 못한다고 했고 저는 그 점이 참 좋았습니다. 담배도 절 만나면서 끊었고요. 막상 결혼해보니 술은 약해도 술자리를 상당히 좋아하더군요. 지금도 술 때문에 저에게 거짓말을 합니다.
게다가 남편은 입으로만 아이를 원할 뿐 그다지 노력하는 모습이 안 보입니다. 부부싸움을 하다 코너에 몰리면 더는 상처주고 싶지 않다며 헤어져 주겠다고 합니다. 다음날이면 두번 다시 거짓말 안 하고 헤어지자는 말도 하지 않겠다고 맹세해놓고는 이런 일이 반복됩니다. 어떻게 해야 이 결혼생활을 지혜롭게 헤쳐나갈 수 있을까요?
A 두 분이 부부로 맺어지는 동안 어려움이 참 많으셨겠다는 생각에 먼저 응원의 박수부터 보내드리고 싶습니다. 양가에서 반대하는 와중에, 한 푼도 없이, 관면혼인까지…. 결혼에 이를 때까지 닥친 시련을 하나하나 헤쳐나가기 벅차셨을 듯해요. 부부간의 문제는 한사람의 잘못을 밝히는 시도나 한 사람만의 개선 노력으로는 해결될 수 없기에 많은 한계가 있겠지요. 그래도 먼저 문제 인식을 하고 노력하고 계신 아내분이 생각해 보실 부분을 살펴보면서 실마리를 찾아보기로 하죠.
앞서 생각해 볼 것은 결국 부부가 되었기 때문에 겪어야 하는 문제일 것입니다. 두 분뿐 아니라 많은 부부들이 결혼을 통해 힘들어하는 그 문제들 말이죠. 이를테면 ‘맘에 안 드는 배우자의 단점 고치기’란 실패율 높은 시도처럼요, 후후. 결혼 전 두 분은 그 힘든 시련을 이겨낼 정도로 서로 사랑하셨을 거고요. 그때는 아마도 서로 좋은 점을 느끼는 데 시간을 더 많이 할애하셨을 겁니다. 상대방에 대한 애정이 큰 만큼, 단점보다는 장점을 더 보여주고 싶었을 테고요. 심지어 이 과정에서 몇몇 남편들은(드물게 아내들도) 자신의 단점을 감추고자 거짓말 혹은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그게 뭐 드라마에서 나올 법한 악랄한 의도나 계획은 아니었겠죠. 당시엔 적어도 지킬 수 있다고 믿으며 진심으로 노력할 의사가 있었을 거라고 좋게 생각해 봅시다, 일단.
그런데 결혼했다고 사랑의 힘으로 없던 능력이 갑자기 생기거나 있던 단점이 쉽게 사라지진 않습니다. 오히려 결혼 초기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어느덧 남편이란 사람은 원래 자기답게 살면서 구애 시기의 포장과 약속에 거품이 빠지기 시작하지요. 술 조금밖에 못한다는 사람이 이틀이 멀다 하고 술 마십니다. 친구는 왜 그리 좋아하는지요. 작은 거짓말이 늘고 자신 없는 일엔 무책임하고 약한 모습까지 보입니다. 어이구, 미워! 이쯤 되면 이를 지켜보다 못한 아내는 ‘이 사람 이런 사람이구나!’ 실망도 하고 남편의 단점 때문에 결혼생활의 행복이 위협받겠다는 불안과 두려움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얼른 이 잘못된 점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는 위기감에 상대를 지적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 지당한 지적들에 대한 상대의 반응은 어떨까요? ‘너도 마찬가지다’라고 반박하거나, ‘나 그런 적 없다’며 회피하거나, ‘그래, 네 말이 맞다. 나 못난 놈이다’라며 자책하는 등 참 답답한 경우가 많았을 겁니다.
남편께서는 아마 마지막의 예가 아닐까 싶은데요. 어렵게 한 결혼이니 두 분 다 ‘이 결혼 반드시 행복해야 한다’는 기대치는 매우 높겠죠. 이때 이렇게 족족 다 맞는 말로 지적을 당하는 남편분은 무슨 생각을 하실까요? ‘내가 이럼 안 되지!’ 하고 추진력 있게 변하면 좋으련만, 오히려 ‘이 결혼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난 정말 무책임한가? 잘해 나갈 수 있을까?’ 등 결혼에서의 자기 역할을 감당할 수 없다는 회의와 자책을 하고 계신 게 아닐까요? 남편분은 아내분의 지적이 ‘행복을 위해 몇몇 문제점만 고쳐보자’는 사랑의 충고라고 받아들이기보다는, 상황을 더욱 부정적이고 무기력하게 받아들이는 듯 보입니다. 본가에서는 못된 아들, 아내에게는 못된 남편, ‘이러다 난 못된 아버지가 되지 않을까’ 두려워하실 수도 있겠네요 이쯤에서 얼마나 어렵게 선택한 결혼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지요. 그 모든 고비를 왜 같이 넘으셨는지, 어떤 힘이 그걸 가능하게 했는지 먼저 생각해보시고 아직 두 분이 그 힘을 믿는지도 스스로에게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거기에 이 모든 걸 넘어설 첫번째 처방이 있을 테니까요. 단점보다 장점을 보던 시선, 상대를 위해 더 좋은 사람이 되고자 했던 노력 등이 거기에 담겨 있습니다. 부부가 서로, 상대가 나를 위해 고쳐야 되는 점을 찾아내고 그걸 고치라고 요구하는 일만 해대고 있다면 아마 싸움이 끊일 날이 없을 거예요. 고쳐야 되는 단점은 자기 자신이 상대를 위해 스스로 발견해야 하고 상대를 위해 그러고 싶어져야 비로소 변화가 가능해집니다. 그러고 싶은 이유는 내가 이 결혼을 선택한 이유와 같지요. 남편분의 경우, 자책감을 키우는 지적보다는 본가를 박차고 아내분을 선택했던 그 이유를 상기시킬 애정과 격려가 필요한 게 아닐까요?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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