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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내게 너그럽게…노력은 이미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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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닥터 소의 심심클리닉
과거 작은 실수 자꾸 떠올라 구직조차 힘드네요
Q 초등학교 5학년 때 사람들 앞에서 말실수를 한 기억이라든가, 버스정류장에서 바지 지퍼를 올리지 않은 채 서 있다 옆 사람이 알려주었던 일이라든가 하는 작은 일부터 수능시험을 망친 일, 교수실에 불려가 삼류라고 혼나던 일 등을 털어버리지 못합니다. 일상생활을 하는 동안 그런 기억 중 하나가 종종 떠올라 내가 왜 그랬을까 하는 생각을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지 반년이 지났지만 기업 입사원서를 제대로 써본 적이 없습니다. 채용정보 사이트조차도 들어가지 않습니다. 자기소개서 질문들에 지레 겁먹고 안 쓰는 거 같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에 대해서 써야 하는데 전 과거의 실수와 잘못들 외에 다른 건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자존감이나 자신감이 바닥의 바닥까지 내려가 있습니다. 책임감·생활력 결여인 이 상태로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못 할 것 같아 앞날의 암울함을 생각하며 또 자학을 하고 있습니다.
A 부끄러운 지난 기억들이 반복되는 이유를 이해하기 위해선 우선 수치심이 가지는 특성을 살펴봐야 합니다. 우리는 수치심이 드는 상황이 되면 그로 인한 분노도 느끼게 됩니다. 마침 그때 주위에서 누군가 그런 자신을 비난하거나 놀리던 이가 있었다면 더 그럴 것이고 이는 나중에 주변의 평가에 지나치게 민감하게 되는 면을 낳기도 합니다. 하지만 결국 결과가 내가 한 실수나 잘못 때문이란 걸 알기 때문에 보통 그 분노는 다시 고스란히 자신을 향하게 되기 쉽습니다. 안 그래도 창피한데 그때 느낀 분노까지 더해지는 바람에 나에 대한 공격의 화살은 그 개수가 더 늘게 되는 셈이죠. 이 때문에 내 자아는 단단히 약점 잡힌 채 쪼그라들게 되기 쉽고 그만큼 자신감, 의욕, 기분 등도 저하될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수치심이 예상되는 새로운 일에 더 용기가 나지 않게 되고 그런 일들에 엄두를 못 내는 생활이 길어지다 보면 자신의 모습에 또 실망을 하게 되니 점점 수치심은 눈덩이처럼 늘어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사이 나는 주변의 시선과 평가에 대해 점점 더 예민하게 돼 심할 경우 내 일거수일투족이 악의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고 느끼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봅시다. 기억 속의 그 사건들에서 실제 주변 사람들이 주인공을 그다지도 비웃었을까요? 또한 그들은 그 후 얼마 동안 그 기억을 하고 있었을까요? 적어도 주인공이 느끼는 것에 비해 상당히 적었을 거란 건 분명해 보입니다. 어느 순간 이 세상이 나를 비난하려는 악의에 찬 심사위원들로 가득 차 있는 것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알고 보면 그들도 역시 이 인생이란 무대에 참가한 동료들일 뿐입니다. 내가 실수할 때 날 놀리던 그들은 어쩌면 그런 행동을 통해 비슷한 일로 자신들이 경험한 수치심을 해소하고 있었는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주인공에겐 그런 해소가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지금에 와서 남을 조롱하고 비난하자는 건 아닙니다. 그러면 주인공의 경우엔 죄책감만 더 늘어날 뿐일 테니까요. 게다가 남의 실수나 잘못에 대해 원색적으로 비난하거나 감정을 자극하는 원시적인 방법들은 정치를 할 생각이 아니라면 진작 업그레이드해야 하는 것들이겠죠.
어쨌든 그 해소에는 ‘그럴 수 있지’라는 공감이 필요한 건 사실일 텐데요. 그런데 나에게 말로 그렇다고 자위해봐야 내 마음속 독한 도덕 선생님이 도사리고 있는 한 잘 먹혀들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그보다 차라리 남에게 말할 수 있다면 이 도덕 선생님도 어쩔 수 없지 않을까요? 예를 들어 직장상사에게 업무 때문에 심한 모욕을 당한 친구를 위로하다가 “야, 난 어땠는지 알아? 대학 때 이러이러한 일로 교수님께 삼류 소리 들었잖아”라고 말한다면, 그 친구는 이렇게 얘기할지도 모릅니다. “너도 어쩌다 일이 그렇게 꼬였었니. 그래도 그 교수, 그만한 일로 그런 얘기를 하다니 말이 심했네. 너 참 창피했겠다!”라고. 여기서 친구가 내 수치심을 공감해 준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내가 내 얘기를 한다는 것이죠. 결국 수치심과 분노를-당시 악의적인 평가자들이 있었든 없었든 간에-괜히 내 탓만 해가며 우울해질 게 아니라, 건강하게 발산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관건입니다. 물론 때로는 내 자아가 지나치게 기죽지 않을 만큼은 수치심과 죄책감으로부터 겸허하게 배우고 자기반성을 해야 될 때도 있습니다. 정말 이 기능이 필요한 사람들을 우리는 요새 연일 뉴스에서 보고 있습니다.
또 하나의 문제는 ‘자존감이나 자신감이 바닥의 바닥까지 내려가 있습니다.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못 할 거 같아 앞날의 암울함을 생각하며 또 자학을 하고 있습니다’라는 표현에서 느껴지듯, 주인공의 현재 기분이 많이 가라앉아 보인다는 점인데요. 이런 기분 상태 탓에 과거의 경험들 중 부정적인 소재 선택이 많아지고, 강박적인 되새김질도 심해졌을 가능성을 고려해봐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인공께서도 예전의 평균적인 기분과 기능에 비해 지금이 분명히 저하된 상태라고 느끼신다면, 그게 어느 정도인지 평가하고 해결하기 위해 전문가를 직접 찾아가보실 필요가 있습니다.
결국 내가 실패하기를 기다리며 나만 관찰하고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제 주저하고 있는 일들을 실행에 옮기고 그런 자신을 스스로 너그럽게 보려는 노력이 필요한 때이고, 주인공께선 이미 고민 사연을 보내시면서 시작하신 겁니다. 힘내세요! 정신과 전문의 고민상담은 go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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