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1.03.17 11:31 수정 : 2011.03.17 11:39

일러스트레이션 양시호

[매거진 esc] 닥터 소의 심심클리닉

Q 7년 사귄 애인, 내 집착 탓에 떠날까 두려워요

저는 7년 사귄 1살 연하 애인을 둔 27살 여성입니다. 결혼할 생각으로 연애를 하고 있고요. 현재 임신 5주째로 유산기가 있다고 해 조심하고 있습니다. 제가 외로움이 많아 저랑만 있어주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인지 떨어져 있으면 전화를 너무 자주 하는 등 집착을 많이 했습니다. 이 때문에 애인 부모님이 저와의 교제를 반대하시고 애인 또한 이별을 결심했었습니다. 그러다 제가 변하겠다고 해 마음을 돌렸지요. 임신 사실은 아직 애인 부모님께 알리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제 행동이 잘 고쳐지지 않습니다. 애인이 다시 떠나버릴까봐 불안한 마음입니다. 애인이 확실하게 집에다 임신 사실을 말하고 저와 있어주었으면 좋겠다는 이기적인 생각만 들고, 그래서 또다시 연락을 자주 하게 되고 징징대는 것 같습니다. 제가 계속 이런 상태라면 애인도 지쳐서 절 포기할 것 같아요.

A사랑하는 남자친구와 그 사랑의 결실 모두 자신을 떠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얼마나 맘 졸이고 계실까요? 현재 주인공을 가장 힘들게 하는 주된 감정은 무엇보다 불안일 텐데요. 이런 두려움은 심리학적으로 유기불안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는 대상에게 버림받지 않을까 하는 불안으로, 인간이 보편적으로 지니고 있는 편이며 아동기 때부터 반복되는 중요한 감정들 중 하나입니다. 사람에 따라 정도의 차이가 있어서 유난히 이러한 유기불안이 강렬한 경우, 이를 파악하기 위해 아동기의 중요한 시기에 이를 강화할 만한 감정적인 경험이 있었는지 탐색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쉽게도 이 지면에서는 정보가 부족하지만, 주인공의 경우 이런 종류의 불안이 상당히 크고 그에 대해 민감하신 편일 거라 짐작이 됩니다.

게다가 7년의 연애기간에 남자친구에게 집착이라고 보일 만큼의 사랑 표현을 해온 것이 결국 남자친구 쪽 부모님이 반대하게 했을 뿐 아니라 남자친구에게도 이별을 결심할 정도의 부담을 주게 되셨는데요. 이러한 반대와 이별 통보의 이유는 주인공의 이런 행동이 나중엔 ‘의부증’으로 나타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드셨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편지 내용만으로 추정해 볼 때, 이 문제는 상대에 대한 떨쳐버릴 수 없는 ‘의심’보다는 지나친 ‘의존’ 때문일 거란 생각이 듭니다. 즉 남자친구가 주인공 옆에 있어줘야 안심이 되고 자신을 떠나버리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모습에서, 자신이 잘 지내기 위해 지나칠 정도로 남자친구에게 기대고 있어 보인다는 것입니다. 다행인 것은 주인공도 자신의 이러한 면이 상대에게 어떻게 비치고 있는지 인식하신다는 점이고 이를 극복하려 다짐하고 노력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역시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불안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부지불식간에 나를 엄습하고 지배해버리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이런 종류의 불안은 매우 강렬한 편이어서 떨쳐버리려고 노력해도 좀처럼 사라지지가 않죠.

여기서 우리는 이러한 불안의 해결을 위한 긍정적인 해소방식의 예를 찾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린아이가 착한 일을 하고 열심히 공부하는 등의 행동으로 부모가 자신을 버리지 않을 거란 안심을 얻으려는 것처럼, 주인공도 7년의 연애기간에 남자친구에게 그런 좋은 모습을 많이 보여주려 애썼을 것이라고 생각되는데요. 그런 모습을 사랑하신 남자친구는 다행히도 아직 주인공의 다짐을 지지하고 떠나려던 마음을 돌린 상황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불안한 마음을 해소하기 위해, 너무 자주 애정을 확인시켜 달라고 하거나 자신을 떠나지 못하게 눈앞에 붙잡아두려고 하는 방식은 오히려 상대를 부담스럽게 하고 그간의 긍정적인 노력마저 무색하게 만들어 버릴 수 있습니다. 결국 자신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어떤 방법을 선택하느냐의 결정이 이 문제에서도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주인공은 이미 자신의 행동이 상대에게 부담을 줄 수 있다고 느끼고 이를 진심으로 개선시키고 싶어하시므로 상황만 좋았다면 그 노력이 서서히 좋은 변화를 일으킬 수도 있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상황은 이미 반대와 이별 통보가 있기 전보다 더 악화되어 있는지라, 이러한 노력을 기울이기가 더욱 어려워진 것입니다. 지금은 남자친구 부모님의 반대, 떳떳한 축복도 받지 못한 임신, 그리고 유산 위험까지…. 생활에서의 전반적인 불안 수준은 더 높아지고 있어서 이에 따라 버림받을지도 모른다는 위기감 역시 더 심해지는 상황으로 보입니다. 그러므로 현재로서는 전반적인 기분 상태를 호전시키기 위한 노력이 우선되어야, 이후 자신의 결심대로 유기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건강한 방식을 시도하고 방해가 되는 방식을 줄여나가려는 노력이 더 수월해질 것입니다. 또한 현재 불안감뿐 아니라 우울감도 상당히 느끼고 계셔서 자칫 주객이 전도되는 상황, 즉 우울과 불안이 자신의 의존과 유기불안을 심화시키고 이로 인한 불안행동이 주변을 또 힘들게 하는 식의 악순환이 이어질 위험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울, 불안에 대한 치료적인 도움이 필요한지 적극적으로 의료기관을 찾아서 상의하시는 것도 고려해 보시기 바랍니다.

어떠한 불안이든 매우 불편한 것은 사실이나 자신을 넘어뜨릴 만큼 치명적이진 않습니다. 그 불안이 주는 위험신호들도 꽤 과장되어 있고요. 이제 이런 생각을 하시면서 주변을 다시 돌아보세요. 자, 남자친구는 지금 주인공 곁을 떠나려고 벼르고 계신 게 아니라, 7년을 같이 키워온 사랑과 그 결실을 지키려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애쓰고 계신 게 아닙니까?


정신과 전문의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닥터 소의 심심클리닉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