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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11.11 10:11 수정 : 2010.11.25 14:57

김경주의 ‘후, 달리는 불량배들’

[매거진 esc] 김경주의 ‘후, 달리는 불량배들’

‘유령작가’ 중에 최근 와이처럼 고심에 빠진 친구도 드물다. 와이는 야설작가다. 소위 야스런 이야기를 써주고 생계를 유지하는 직업이다. 범위를 펼치면 ‘음란물 제작자’로 먹고산다는 말이다. 그가 쓰는 원고는 다양한 단계를 거쳐 입체화된 음란물로 서비스화된다.

주로 시각적으로 극대화된다. 대개 야한 사이트의 매물이 되긴 하지만 스토리가 탄탄하고 반응이 좋으면 한정판 디브이디(DVD)로 변신해 국외로 유통되기도 한다. 와이는 이러한 사항을 종로 뒷골목 건물의 몇 층에선가 어두운 남자와 계약서를 쓰면서 동의했다. “스팸시장의 단원이 된 걸 축하하오. 물을 수도 없소. 뭔가를 주장한다고 해도 근거가 없소. 스팸은 근거가 없는 시장이오. 누가 읽는지 어디로 원고가 흘러가는지 물으면 다쳐요. 이 바닥의 불문율이오. 당신은 내게 원고를 삽입해주고 나는 유통시키고, ㅇㅋ? 둘째, 아무리 낯 뜨거운 이물질을 글 속에 살포해도 죄책감이나 부끄러움 따위 시달릴 이유 없소. 지나친 상상력을 기대해 보겠소. 물론 이쪽에서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애프터서비스(AS)는 필수요. ㅇㅋ?” “(끄덕끄덕) 근데 어떤 식으로 원고를 애프터서비스(?) 한단 말이죠?” “에이, 간단하지. ‘꼴릴’ 때까지.”

야설작가는 명함이 없다. 주변에 말하기도 좀 민망하다. 여자친구에겐 뭔가를 열심히 각색해주고 있다고 단도리해둔다. 멀리 있는 가족에겐 몇 년째 처음 쓴 원고제목을 따서 ‘보충수업’ 교사라고 해두었다. 와이가 지금처럼 야설작가가 되어 일주일에 한번 들어오는 몇 만원의 주급(?)으로 생존보호망을 만들게 된 계기는 이렇다. 와이는 국문과 졸업 뒤 시나리오작가가 되고자 사설 아카데미 학원에 다녔다. 몇 년 골방에 갇혀 보았지만 별 소득이 없었다. 글을 쓰고 싶고 먹는 것은 해결해야 하고 이것저것 끼적거리다가 우연히 잡코리아의 번쩍거리는 ‘상상력이 남 뺨치는 작가모집’ 배너 하나를 클릭!했다. 처음엔 제법 의기양양했다. 야동 검색사로선 충실한 인터넷 시민 역할을 해보았으니 그까짓 야한 이야기 정도야….

그러나 와이는 백전백패했다. 스팸메일 제작자들끼리 경쟁이 장난이 아니다. 툭하면 투고해보는 신춘문예의 허수 경쟁률하고는 비교가 안 된다. 이쪽이 정말 생계로 매달린다면 순수문학 쪽은 간절함 정도다. 무엇보다 야설작가로 버티려면 버려야 할 사항이 있다. 윤리적 기준, 여기선 남이 해서는 안 되는 음란이 도덕이다. 이를테면 ‘오빠의 손장난이 너무해’부터 ‘미안하다 사정한다’까지, 모두 반도덕 패러디다. 소재 고갈에도 시달린다. 상상력이 꼬이더니 ‘악마에게 강간당하는 기분이 곧 들 거야’ 선배가 그만두면서 해준 말이 도움이 된다. 근친상간은 기본이고 그날 지하철에서 본 사람들, 소개받았던 친구 여친까지 고스란히 야설로 모셔온다. “난 내가 쓴 원고에 매일 강간당하는 기분이 듭니다.” 결국 신부를 찾아가서 이렇게 고해성사도 해보았다.

그러는 사이, 팬레터가 제법 쌓였다. 십대보단 장년이 많다. “중장비 다루는 사람이오. 다음호엔 좀더 묵직한 것을 원하오.” 포클레인 기사님부터, 일수업자, 심지어 퀼트 하시는 아주머니도 계시다. 와이의 최근 고민은 이제 그만 합법적 글쓰기를 하고 싶다는 거다.

김경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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