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02.17 10:31
수정 : 2011.02.17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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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주의 ‘후, 달리는 불량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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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김경주의 ‘후, 달리는 불량배들’
P는 환경운동가다. 그는 얼마 전 스물여섯의 나이에 노벨평화상 후보에 오르기도 한 줄리아 버터플라이 힐의 책을 읽고 깊이 감명받았다. <나무 위의 여자>라는 저서로 잘 알려진 힐은 현재 미국에서 유명한 환경운동가 중 한 사람이다. 그는 55m의 나무 위에서 무려 2년 동안이나 살았다. 삼나무가 벌목되는 것에 저항하기 위해 그녀가 선택한 수단은 나무에 올라가 사는 것이었다. 나무 위에서 밥 먹고, 오줌 누고, 코도 파고, 기타도 치고, 노래 부르며 살았다고 한다. 캠프를 꾸린 것이다. 738일간 나무 위에서 살며 느끼던 비바람, 폭풍우, 공포감, 평온 등을 생생하게 기록했다. 벌목회사 직원들은 나무 아래서 그녀를 협박했다. 기다란 막대기로 나무를 들쑤시며 공갈을 하기도 했고 확성기로 “이제 그만 내려와 협상을 하자”고 해도, 그녀는 한사코 흘러가는 구름만 바라보았다. 바닥이 아득해도 그녀는 나무 아래로 내려가지 않았다.
P는 그녀의 그런 용기에 고무돼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의 환경운동을 하나 시작했다. 아침마다 재개발되어가는 언덕의 산지에 올라가 나무를 끌어안는다. 힐이 나무에 올라탔다면 P는 나무를 꼭 끌어안는 방법을 택했다. 이게 무슨 해괴망측한 발상이냐고 물으신다면 조금 더 이야기를 들어봐야 한다. P는 포클레인이 일을 시작할 즈음, 그들이 보이는 곳에 위치한 나무 한 그루를 꼭 끌어안고 있다. 매일 재개발 작업을 마칠 때까지 나무를 끌어안고만 있다. 처음엔 봐주는 이 하나 없었다. 하지만 점점 풍문이 돌기 시작했다. 고소공포증이 있어 그는 나무에 올라타는 것보다 이 방법이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더 호소력이 있다고 판단했다. 그는 나무 위에서 사는 것보다 매일 나무를 꽉 안고 버티고 있는 자신의 응고체에 만족한 듯했다. 한번은 포클레인 기사가 자신을 유령처럼 대하며 옆으로 와 바지를 내리고 노상방뇨를 하고 간 적도 있었다.
사실 이 방법도 완전히 P의 것이라고 하기엔 좀 무리가 있다. 몇년 전 우연히 한 잡지에서 일본의 한 평범한 남자가 몇년간 매일 아침 나무를 끌어안은 채 벌목을 반대한다는 기사를 본 것이 번뜩 생각난 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P는 새도시를 건설한다는 목적으로 헐리고 있는 재개발 지역의 안타까움을 겨냥하기 위해 나무를 선택한 것이다. 재개발 지역의 사람들을 선동해서 함께 건물을 끌어안고 있자고 제안하는 것은 너무 무모해 보이기도 했고, 그렇다고 허락도 없이 남의 건물에 마냥 붙어 있을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P는 이 운동을 얼마 못 가서 포기하고 말았다. 사람들이 흉하다고 그만두라고 재촉했기 때문이다. “심정은 이해하겠소만 거, 모냥이 너무 안 나는 거 같지 않소? 낯선 사람이 와서 나무에 똥파리처럼 붙어 있으니까 아이들도 심란해하는 것 같고, 나무도 당신이 가고 나면 꽤 답답해하는 표정 같기도 하고….” P는 자신이 하는 일이 나무에게 미안한 일인지는 확신이 서지는 않았지만 주민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은 분명하다고 판단했다.
김경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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