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0.12.16 11:27
수정 : 2010.12.16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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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조광수의 ‘마이 게이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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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김조광수의 ‘마이 게이 라이프’
레즈비언 커플의 집들이에 다녀왔다. 올해로 동거 4년차인 그들은 최근에 집을 넓혀 이사를 했다. 일산의 끝자락에 있는 새 아파트 단지였는데, 지하철역에서 좀 먼 것이 흠이었지만 동네도 깨끗하고 아파트 평수도 꽤 넓어서 쾌적했다. ‘상다리 부러지도록’에 어울릴 만큼 많은 음식을 직접 요리해서 내왔다. 중국집에 주문한 음식을 먹게 될 거라는 생각은 기우였고 “요리 잘하는 레즈비언 없다”는 것도 편견이었다. 맛있는 요리와 술 그리고 친구들.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는 밤이었다. 술잔이 채워지고 비워지기를 거듭하면서 “생활 습관이 달라서 여전히 다툴 때가 있다”, “가사 노동이 한 사람에게로 치우치는 건 언년이 근성 때문이다”라는 등의 여느 동거 커플에게서 들을 수 있음 직한 얘기들이 오갔다. “그래, 그렇게 사는 거지. 다 똑같지 뭐”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발견한 것. 방이 세 개였는데 침실이 둘이었다. 각방을 쓰나? 노! 커밍아웃하지 않은 레즈비언 커플임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순간이다. 4년째 동거중이지만 아직 부모님들은 그들의 동거를 ‘맘에 맞는 선후배가 같이 어울려 사는 것’ 정도로만 알고 계신다고 한다. 그렇다 보니 부모님이 방문할 때를 대비해서 각자의 침실을 따로 만들어 놓고 있었다. 그들은 그 정도로도 만족하며 사는 것 같았다.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살고 있으면 됐지 뭐 더 바랄 게 있느냐는.
생각해 보니 우리 커플도 만만치 않다. 나의 파트너(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섹스 파트너를 생각하는데, 그건 아니고 인생의 파트너를 말한다)도 부모님께 커밍아웃을 하지 않은 터라 우리의 동거도 위장이 필요하다. 나의 파트너는 작년 10월까지 누나와 함께 살았다. 그때까지 우리는 주중엔 따로 지내고 주말에만 같이 지내왔다. 그러다가 그의 누나가 결혼을 하면서 혼자 살게 된 그의 집에 내가 들어가 본격적인 동거가 시작되었다. 나는 월세를 살고 있었고, 그는 전세였기 때문에 내가 그의 집으로 들어가는 게 낫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지만 내 집으로 그가 옮기기에는 명분이 없다는 것이 주요했다. 그런데 문제는 왜 같이 사느냐는 것. 그의 부모님을 납득시킬 만한 이유가 필요했다. 그래서 짜낸 묘안이 방을 세놓는 거였다. 문간방을 세놓아 그걸로 아파트 관리비를 내겠다고 하면서 모양새는 갖춰졌다. 인생의 파트너가 세입자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창원에 사시는 그의 부모님이 서울에 올라오신다. 그의 부모님이 방문하실 때마다 나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집을 비운다. 그의 부모님께 세입자로 인사를 드리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얼굴 마주 대하며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하고 싶지도 않을뿐더러 언젠가 그가 부모님께 커밍아웃을 하면 그때 정식으로, 파트너로 인사를 드리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그의 부모님이 며칠씩 머무르실 때는 좀 곤욕이긴 하다. 그때마다 선후배들에게 신세를 져오다가 얼마 전부터는 어머니 댁에 간다. 어째 맘이 짠하다고? 그럴 것 없다. 덕분에 효자라고 칭찬도 듣고 좋지 않은가! 하하!
김조광수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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