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02.10 13:26
수정 : 2011.02.12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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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조광수의 ‘마이 게이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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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김조광수의 ‘마이 게이 라이프’
나와 나의 파트너의 나이 차이는 열아홉 살이다. 내가 더 많다. 도둑놈이라고? 처음 사귈 때는 그런 생각에 동의하지 않았다. 연륜 있는 나와 사귀는 그가 땡잡은 거라고 생각했다. 미친 거 아니냐고? 뭐, 그렇게 생각하더라도 할 수 없다. 진짜로 그랬으니까. 그러다가 어떤 이가 내게 ‘유괴범’이라고 얘기했을 때 알았다. 아, 땡을 잡은 건 나로구나! 그는 내가 대학 2학년생이던 때 태어났던 것이다. 그러니 만약 그 시절에 내가 그와 사귄다고 했다면 유괴범이란 단어가 성립되는 거였다. 그런고로 내가 미안해야 하는 거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이 무슨 해괴한 염장질이냐고? 성이 나더라도 조금 참으시라. 이상한 가부장제 나라 대한민국에서 커밍아웃하고 사는 게이가 부리는 약간의 호사다. 이쯤은 받아줘야 한다. 이성애자로 사는 게 얼마나 많은 걸 누리고 사는 건데 그러시나! 솔로로 사는 성소수자들에겐 미안하다. 좀 봐주시라. 그래도 열 받는다면 내 얘기를 더 들어 보라.
사실 이 글은 내 신세 한탄이다. 내 파트너는 내 명의로 된 아이폰4를 갖고 있다. 결국은 내가 선물한 꼴이 되었지만 시작은 이랬다. 아이폰4를 갖고 싶었던 그는 온라인 예약 첫날 새벽같이 일어나 광란의 클릭을 했다. 하지만 서버가 다운되는 바람에 뜻을 이루지 못하고 등교(그는 아직 대학생이다)를 했고 그를 어여삐 여긴 내가 컴퓨터 앞에 앉아 새로 고침을 눌러대다가 결국 접속에 성공! 하지만 난 그의 주민번호나 통장번호 등을 외우지 못했고 결국 내 명의로 예약을 하게 되었다. 대기 순위도 엄청 빨라서 칭찬에다 ‘자상한 파트너’ 칭호까지 하사받았다. 며칠 후 전화기를 받으러 갔을 때 예약 사항을 변경하려면 6개월이 지나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명의도 바꿀 수 없고 요금도 내 신용카드로 납부해야 했다. 뭐, 거기까지는 통 크게 선물했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 전화기를 받고 뛸 듯이 기뻐하는 파트너를 보면서 나도 흐뭇했으니까. 나를 슬프게 한 사건은 그로부터 며칠 뒤에 일어났다. 전화기에 약간의 문제가 있어서 대리점에 갔던 파트너는 본인의 이름으로 된 것이 아니라는 이유로 발길을 되돌려야 했고 다음날 내 주민등록증을 들고 다시 대리점을 찾았다. 큰 문제가 아니어서 해결도 쉽게 되었다. 여기까지는 아무 문제 없었다. 다음과 같은 대리점 직원의 얘기를 듣기 전까지는. “아버지가 참 좋은 분이시네요. 아드님께 아이폰을 다 선물하고.”
나 원 참. 이게 무슨 꼴인가. 새벽같이 일어나 예약해주고 명의 빌려주고 요금까지 내주는데 아버지라니! 내가 어디 봐서 대학생 아들이 있는 사람이냐구. 더 열 받는 건 파트너의 태도였다. 그렇게 얘기하는 대리점 직원에게 아무런 해명도 하지 않고 웃으며 나왔다고 했다. 거기에다가 재밌는 얘기 들려주듯 내게 전해주는 게 아닌가. 동성결혼 합법화에 대해 일장연설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아버지는 아니라고 했어야지! 응?
오늘 나의 신세 한탄을 들어주어서 너무 고맙다. 복 많이 받으실 것이다. 그래도 염장질이라 화가 난다고? 아닌데, 신세 한탄 맞는데.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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