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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2.24 11:27 수정 : 2011.02.24 11:27

김조광수의 ‘마이 게이 라이프’

[매거진 esc] 김조광수의 ‘마이 게이 라이프’

얼마 전부터 전자우편을 주고받는 게이 소년이 있다. 나이는 열일곱, 사는 곳은 경북의 작은 소도시. 이 소년이 내게 처음 보낸 전자우편의 제목은 “감독님 죽고 싶어요”였다. 깜짝 놀라 열어 본 전자우편에는 열일곱 꽃 같은 나이의 소년이 겪기엔 너무 절망적인 이야기들이 구구절절 펼쳐져 있었다.

소년은 중 3 때부터 자기가 친구들과는 다른 성적 지향을 지녔다는 걸 알게 되었다고 했다. 같은 반 친구를 짝사랑하면서 괴로움은 커져 갔다. 주변에는 고민을 털어놓을 사람이 없어 인터넷을 뒤지다가 이반들이 모이는 사이트를 알게 되고 거기서 사람들과 대화도 하게 되었고 가끔은 대구로 가서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가 만난 이반들은 그를 친구로 대하기보다는 성적 대상으로만 보았다. 소년의 고민은 깊어 갔고 결국은 학교 선생님께 도움을 청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소년의 고민을 들은 선생님은 그 사실을 소년의 부모님께 알렸다.

아무것도 모른 채 집에 갔던 소년은 부모님께 취조를 당한 것도 모자라 정신병원으로 끌려 다녔다. 정신과 의사들은 동성애가 병이 아니라고 했다. 병원에서 치료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부모는 종교에 매달렸다. 방학이 되자 소년을 기도원으로 끌고 갔다. 마귀를 쫓아야 한다며 감금을 했고 심지어 폭행에 가까운 안수기도란 것을 하기도 했다.

방학이 끝나 학교로 돌아갔지만 불행은 끝이 아니었다. 이미 학교에는 소년이 게이라는 소문이 쫙 퍼져 있었고 같은 반 아이들 중 호모포비아 성향을 가진 아이들이 괴롭히기 시작했다. 참다못한 소년은 부모님께 전학을 보내달라고 했지만 돌아온 것은 견디라는 말뿐이었다. 소년은 이제 더는 도움을 청할 곳도 사람도 없다고 했다. 그래서 죽고 싶다고 했다. 열일곱인 소년이 그렇게 말했다.

소년은 그저 사춘기를 지나고 있을 뿐이다. 누군가를 짝사랑하고 그것 때문에 설레기도 하고 괴롭기도 하고 그런 것이 사춘기라면 소년도 그것을 겪고 있을 뿐이다. 그 대상이 이성이 아니라는 이유로 이렇게 가혹한 일을 겪어야 하는지 너무 화가 나고 답답하다. 하지만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많지 않다. 그건 네 잘못이 아니다. 병이 아니다. 결코 목숨을 가벼이 해서는 안 된다. 그런 말을 차분하게 해주는 것뿐이다. 다행스럽게도 소년은 전자우편을 또 보내왔고 난 또 답장을 했고 다시 또 답장이 왔다. 소년의 환경이 변한 건 아니지만 소년의 마음은 조금씩 변하고 있는 것 같다고 느낀다. 최근에 보내온 전자우편에서는 자기 꿈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선생님이 되고 싶었는데 가능한 일인지 물었다. 내가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고 하니까 신기하게 생각했다. 이반 교사들도 꽤 많고 인터넷에는 이반교사모임도 있다고 알려주었다. 포기하지 말고 꼭 좋은 교사가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그리고 혹시라도 급하게 도움이 필요하면 전화하라고 번호도 남겼다. 아직 소년에게서 답장이 없다. 전화도 오지 않았다.

김조광수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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