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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5.05 10:15 수정 : 2011.05.05 10:15

김조광수의 ‘마이 게이 라이프’

[매거진 esc] 김조광수의 ‘마이 게이 라이프’

지하철을 타고 법원 입구에 도착했다. 어떤 분이 ‘친구사이’라는 말이 들어간 팻말을 들고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반가운 마음에 달려가 보니 “판사님, <친구사이?>로부터 우리 아이들을 보호해주세요”라고 쓰여 있다. 이런, 내 편이 아니었구나! 아저씨에게 “여기서 뭐 하시냐?”고 물으니 “친구사이라는 영화에 대한 선고가 있는 날이어서 나왔다”고 한다. “영화는 보셨냐?”고 물으니 보지는 못했다고 한다. 영화도 보지 않고 1인 시위를 하느냐고 했더니 “동성애 영화 뻔하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꼬치꼬치 따지고 싶지만 시간이 없어 패스. 서둘러 법정으로 향했다.

사람들은 그다지 많지 않다. 내 뒷자리엔 말쑥하게 차려입은 아주머니 세분이 기도를 하고 있다. 판사가 들어오고 기립을 하라는 소리가 들린다. 판사가 들어온다고 왜 꼭 기립을 해야 하는 건지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서고 있다. 내 뒷자리 아주머니들은 기도를 멈추지 않는다. 간절히 기도를 해야 하는 중요한 재판을 앞두고 있는가 보다.

판사는 사무적인 목소리로 선고를 한다. “사건번호 ○○○ 원고의 항소를 기각한다.” 앞에 있는 마이크는 그저 모양인지 너무 소리가 작아 잘 들리지 않는다. 게다가 뒷자리 아주머니들의 기도 탓에 집중이 되질 않는다. 드디어 내 사건 차례. 판결은 “사건번호 ○○○ 피고의 항소를 기각한다.” 어? 내가 이긴 거다. 어느새 기도를 멈췄는지 뒷자리 아주머니들이 웅성거린다. 내가 맞게 들은 건지 확인하고 싶지만 판사는 다른 사건에 대한 선고를 쏜살같이 하고는 새로운 사건의 재판을 진행하고 있다. 붙잡고 물어볼 이도 마땅치 않아서 법정 밖으로 나왔다. 문을 열고 나오는데 기자 세명이 나를 둘러싸고 승소한 기분이 어떤지 묻는다. 그래, 내가 이긴 거였어! “영화를 보셨으면 아시겠지만 당연한 결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멋지게 말하고 있는데 기도하던 아주머니 세분이 득달같이 다가와서는 “동성애 영화가 청소년들에게 얼마나 해로운지 아느냐?”고 따지듯 묻는다. 그러면서 “언제부터 동성애자가 됐냐?”라고도 한다. 법정 앞에서 동성애 인권교육을 좀 해볼까 싶었는데 청원경찰이 법정 앞에서 이러시면 안 된다며 해산하라고 한다.

밖으로 나와 트위터에 승소 소식을 올린다. 법원 입구에 1인 시위를 하던 아저씨와 그의 동료가 모여 있다. 선고 소식을 들었느냐고 물으니 못 들었다고 한다. “원고 승소 판결 났어요. 제가 이긴 거예요!” 큰 소리로 알려 주고 가벼운 걸음으로 총총히 사라진다.

법원은 판결문을 통해 이렇게 말했다. “동성애를 유해한 것으로 취급하여 그에 관한 정보의 생산과 유포를 제한하는 것은 성 소수자들의 인격권, 행복추구권에 속하는 자기결정권 및 알 권리, 표현의 자유, 평등권 등 헌법상 기본권을 지나치게 제한할 우려가 있다.”

영화 <친구사이?>에 대한 청소년 관람 불가 취소 판결이 있던 날의 이야기다. 그날 트위터에는 수백명의 축하 멘션이 달렸다.

김조광수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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