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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6.02 11:04 수정 : 2011.06.02 11:04

김조광수의 ‘마이 게이 라이프’

“10년만 하라.”

내가 자주 하는 말 가운데 하나다. 10년. 10년만 하면 뭔가를 이룬다는 의미를 담아 사람들, 특히 꿈을 이루려 애쓰는 후배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다. 밑도 끝도 없이 왜 10년이냐면, 강산이 변한다는 옛말에 비춘 것도 있지만 그저 내 경험에 기댄 것이 크다. 그 어떤 특별함도 없던 나도 영화 일을 10년 넘게 했더니 어느새 장편영화 13편을 제작한 프로듀서에다가 단편 3편을 연출한 감독이 되지 않았나. 그러니 꿈을 꾸는 사람들이여, 더도 말고 덜도 말고 10년만 노력하시라! 꿈이 현실이 될 수도 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10년만.

10년을 하다 보면 노하우도 생기고 인프라도 생기고 스킬도 생긴다.(영어도 못하는 주제에 외국어 남발이라 죄송스럽지만 대체할 만한 우리말 찾기가 쉽지 않다.) 그러다 보면 나도 모르게 어느새 전문가가 되어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물론 그 10년이 신선놀음일 리는 없다. 10년 동안 꾸준히, 적어도 남들보다는 조금 더 열심히 해야 한다.

지난 10년 동안 나에게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다른 사람 일을 돕는 것만으로도 기뻤는데 언제부턴가 내 이름을 걸고 하는 일들이 많아졌다. 직함도 늘었다. 제작자가 됐고 겸임교수가 됐고 감독도 됐다. 그리고 가끔 길에서 나를 알아보는 사람들을 만나 사인을 해주는 이른바 연예인놀이를 하기도 한다. 이렇게 따져보니 광수, 정말 용 됐다.

서울 엘지비티(LGBT, 레즈비언·게이·바이섹슈얼·트랜스젠더)영화제도 올해로 꼭 10년이 되었다. 지난 10년 동안 대한민국의 성소수자들은 벽장문을 열고 나와 서울의 한복판에서 성소수자임을 당당히 외치며 행진을 벌여왔다. 이름하여 퀴어 퍼레이드. 대학로에서 홍대로, 그리고 이태원을 지나 종로와 청계천까지, 장소는 바뀌었지만 퍼레이드가 열리는 대한민국의 서울은 당당하고 즐거운 퀴어들에 의해 무지갯빛으로 물들곤 했다. 시작할 땐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뉴욕도 밴쿠버도 시드니도 아닌 서울에서 퀴어들의 행진이 10년을 넘길 거라고는. 그 축제의 한가운데에 서울 엘지비티영화제가 자라나고 있다.

올해는 10주년이 된 서울 엘지비티영화제에 아주 중요한 해가 될 것 같다. 성소수자와 영화계 인사들을 모셔와 집행위원회, 사무국을 새롭게 꾸렸고 배우 소유진씨를 영화제의 친구인 홍보대사로 위촉하였으며 여러 조직과 기업들을 후원단으로 위촉했다. 상영 기간도 1주일로 늘어났고 총 11개 나라에서 온 23편의 영화들이 관객들을 만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자원봉사자로만 구성된 스태프들이 6개월 동안 땀 흘려 이룬 성과다. 나는 지난해까지는 관객으로만 영화제에 참여하다가 올해 처음으로 집행위원장을 맡아서 일하고 있다. 막중한 책임감으로 어깨가 무겁기도 하지만 영화제의 일원으로 손님들을 맞는다는 기대감에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한다.

진수성찬을 차렸어도 손님이 없으면 그 잔치는 꽝이다. 예쁘게 꽃단장하고 버선발로 뛰어나가 맞이하겠으니 많이들 오시라! 바로 오늘 개막이다.

김조광수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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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김조광수의 ‘마이 게이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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