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06.30 09:55
수정 : 2011.06.30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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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조광수의 ‘마이 게이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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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조광수의 ‘마이 게이 라이프’
지-보이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게이들로만 구성된 합창단의 이름이다. 내가 활동하고 있는 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의 작은 소모임으로 출발한 지-보이스는 이제 성소수자들 사이에선 꽤 유명한 합창단이 되었다. 2003년 결성되어 초기에는 인권단체의 행사나 퀴어 퍼레이드 개막 공연 등에 오르다가 2006년 겨울 첫 공연을 한 이후 매년 가을 정기공연을 하고 있다. 첫 공연 때부터 매진을 기록해서 공연장을 찾은 관객들을 깜짝 놀라게 하더니 지금까지 매진 행렬을 하고 있는 인기 합창단이다. 일주일에 한 번 모여서 연습하는 아마추어 합창단의 이력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기록들인데, 그 이유는 간단하다. 음주가무에 능한 게이들이 아닌가!
게이합창단이다 보니 어려움도 많이 따랐다. 단원들 중 커밍아웃을 한 사람들보다는 아직 숨겨야 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관객들 앞에 서는 것을 어려워하기도 했다. 처음엔 가면을 쓰고 무대에 오르는 단원들이 더 많았다가 점점 가면을 벗어갔고 꿈에 그리던 정기공연에서는 모두 가면을 벗고 당당히 무대에 오르게 되었다. 누가 공연을 보러 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게이합창단임을 밝히고 공연 무대에 올라 노래하는 것은 곧 커밍아웃이다. 그렇다 보니 연습한 단원들 모두가 공연에 참여하지 못하는 경우도 생기게 된다. 두려움 때문에 수없이 망설이다 용기를 내어 무대에서 노래하고 춤을 추게 된 단원들은 관객들의 환호 속에 커밍아웃하는 남다른 경험을 하기도 한다. 성소수자들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심한 우리 사회에서 게이합창단의 공연은 어렵고 힘들 때도 있지만 그만큼 감동적이다.
지난달 지-보이스는 용기를 더 냈다.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공연을 감행(?)한 것이다. 공연장 무대에 오르는 것과 야외 공원 무대에 오르는 건 다른 단계로 진화하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무작위 대중 앞에 서야 하는 것이었고 용기가 더 필요한 일이었다. 그날 공연에는 작은 사건이 하나 있었다. 신입 단원인 후배의 어머니가 친구들과 공원에 놀러 왔다가 무대에서 리허설을 하는 아들을 보게 된 것이다. 아직 어머니께 커밍아웃을 하지 않았던 후배도 그걸 친구들과 함께 본 어머니도 깜짝 놀라 순간 얼음처럼 굳어졌다. 어머니가 아들을 불러낼 때, 이 사건의 끝이 어떻게 될지 몰라 다들 긴장했다. 다행스럽게도 어머니는 아들을 무대에서 끌어내리지는 않았다. 뜻하지 않은 어머니와의 조우에 당황한 후배를 다독이고 공연은 시작되었고 수많은 관객들 앞에서 단원들 모두 활짝 웃으며 노래하는 모습은 정말 아름다웠다. 황망했을 감정을 추스르고 공연을 잘 끝낸 후배에게 우리는 커밍아웃을 축하하는 꽃다발을 건넸다. ‘그날 이후 후배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가 지난날의 스토리였다면 ‘그날 이후 후배는 더 열정적으로 공연에 참여하고 있다’가 현재 진행형의 스토리이다.
게이들은 즐겁고 행복하게 사는 것 자체가 투쟁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지-보이스의 노래와 춤은 두말하면 잔소리 되겠다. 얼마나 게이스러운 투쟁이고 혁명인가!
김조광수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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