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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7.14 10:49 수정 : 2011.07.14 13:30

어릴 적 소나기 내린 뒤 나타나는 무지개는 대단한 판타지였다. 빛깔도 정말 예뻤지만 푸른 하늘 저 멀리에 떠 있는 모습은 꿈을 상징하는 것만 같았다. 닿을 수 없는 무지개는 동화로 영화로 또 노래로 만들어져 꿈을 더 키워냈다. 사람들은 무지개 너머 희망이 있다는 꿈을 꾸었다. 환경이 파괴되어 무지개를 볼 수 없게 되니 그 꿈도 따라 사라지는 것 아닌가 싶다.

그래서 무지개를 띄웠다. 하늘에 둥둥. 진짜 무지개는 아니고 무지개 깃발 얘기다. 낚싯대를 깃대 삼아 그 끝에 매달고 높이 올렸다. 하늘 높이 휘날리는 무지개 깃발은 대규모 시위 현장에서 인기가 많다. 시위대의 머리 위, 제일 높은 곳에서 날리고 있는 깃발은 주변의 깃발들 중 최고의 색감을 뽐내고 있는지라 어디서 보든지 눈에 확 띄기 때문이다. 그런 연유로 “나 무지개 깃발 밑에 있어”라며 친구 찾기에 아주 유용하게 쓰이기도 한다.

몇년 전 촛불이 광화문을 뒤덮었을 때의 일이다. 깻잎머리를 한 촛불소녀 서넛이 내게로 오더니 “이 깃발은 뭐예요?”라며 묻기에 “동성애자들을 상징하는 거예요”라고 대답해주었다. 그랬더니 그 소녀 대뜸 “어머, 아저씨 그럼 호모예요?” 했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호모 소리에 깜짝 놀랐는데, 옆에 있던 다른 여학생이 “어머, 얘는 무식하게 호모가 뭐니? 게이라고 해야 하는 거야”라고 했다. 그렇게 불쑥 튀어나온 호모는 게이로, 성소수자로, 차별 반대로 이어지며 어느새 5분 토론이 되었다.

성소수자들의 상징이 여럿이지만 가장 대중적이고 국제적인 인기를 차지한 건 빨주노초파보 여섯 색으로 이루어진 무지개 깃발이다. 일곱 색이 아니라 여섯 색인 데는 역사가 있다. 1978년 샌프란시스코의 길버트 베이커라는 화가는 지역의 동성애 운동가로부터 동성애자들의 상징물로 사용할 수 있는 깃발을 만들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다양성을 표현하고자 했던 그는 올림픽 깃발이 다섯 가지 색깔을 사용하는 것에서 힌트를 얻어 일곱 색 무지개 깃발을 만들었다. 그런데 그해 11월, 커밍아웃한 게이 시의원 하비 밀크가 저격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를 계기로 동성애자 커뮤니티의 힘과 연대를 보여줄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1979년 대규모 퍼레이드를 시작하게 되었다. 퍼레이드 위원회는 행진 구간의 양쪽 길을 장식할 상징물로 무지개 깃발을 선택했는데 색깔의 수가 홀수인 게 문제였다. 고민 끝에 남색을 뺀 여섯 색을 반으로 나누어 양쪽 길에 설치했다. 그렇게 사용한 여섯 색의 무지개 깃발이 국제적으로 확산되어 성소수자들의 상징이 되었다.

한국의 성소수자들이 무지개 깃발을 처음 띄운 건 1997년 노동법 날치기 반대 투쟁 때다. 처음엔 시위 대열 내부에서도 거부감을 표시하는 이들이 있었지만 이제는 빠지면 섭섭한 다양성의 상징, 인권의 지표처럼 되었다. 불의에 저항하는, 희망을 만들려는 깃발들 사이에서 무지개를 보는 건 당연한 일이 되었다. 새로운 연대 투쟁의 모범이 되고 있는 희망버스에서도 무지개는 빠지지 않았다. 그렇게 성소수자들의 희망에서 모두의 희망으로 변화하고 있다.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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