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07.28 11:48
수정 : 2011.07.28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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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조광수의 ‘마이 게이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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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김조광수의 ‘마이 게이 라이프’
미디어를 통해 사회적으로 커밍아웃을 하고 살게 되면서 힘든 때가 있지만 나보다 더 힘들어진 사람들이 있다. 그 첫번째는 부모님과 가족들이고 그다음이 내가 사랑했거나 사랑하려고 노력했던 사람들이다. 사회적인 커밍아웃은 내가 드러나는 걸로 끝나지 않았다. 나와 관계된 많은 사람들이 함께 드러나게 되었고 그건 좋은 결과만을 가져오진 않는다. 아니, 좋은 건 많지 않고 나쁜 일이 더 많다고 해야 맞다. 때로는 큰 상처로 남기도 한다. 커밍아웃을 위해 10여년을 준비한 나와는 달리 아무 준비 없이 노출된 내 주변 사람들, 특히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우리 가족은 가톨릭 신자들이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포함해 여섯 식구 모두 가톨릭에서 영세를 받았다. 엄마는 주일 미사는 물론이고 여신도들의 모임인 레지오 그리고 성당의 크고 작은 봉사 모임에 열성적인 분이다. 그런 분에게 게이 아들은 감춰야만 하는 존재일 수도 있었다. 로마가톨릭은 동성애를 ‘교리에 어긋나는 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엄마는 아들이 게이인 걸 받아들이는 힘든 과정을 겪으시면서 동시에 신앙인으로서 교리에 반해 살고 있는 아들의 문제까지 고민해야 했다. 그 힘든 과정을 오롯이 혼자 감당하셔야 했고 난 도움을 주기는커녕 사회적인 커밍아웃이라는 새로운 짐을 얹고 말았다. 지방 소도시의 작은 성당에서 열정적으로 활동하시는 엄마에겐 참으로 가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엄마는 묵묵히 잘 견디셨고 지금도 그 어떤 신자보다 더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신다.
아주 가끔씩이지만 내가 방송에 나오는 일도 있다. 그것도 삼천리 방방곡곡 어디나 틀기만 하면 나오는 공중파에서 동성애자임을 자랑스럽게 얘기하는 장면으로 나오기도 한다. 그런 다음 날엔 엄마는 되도록 성당에 가지 말아야 한다. 엄마의 성당 친구들(대부분 엄마와 비슷한 연배의 할머니들이다)이 어김없이 “자매님 아들은 아직도 호모냐”고 묻기 때문이다. 악의가 있거나 비난을 하려고 그러는 건 아니다. 그분들은 진심으로 엄마와 나를 걱정하는 마음으로 내가 여전히 호모냐고 아직 치료가 되지 않았느냐고 묻는 것이다. 되레 그렇기 때문에 더 곤혹스럽다. 엄마는 그냥 웃고 만다고 했다. 별일 아닌 듯 말씀하시지만 그 속이 시커멓게 타고 있음을 어찌 모르랴. 내가 호모임을 감추고 조용히 숨어서 살고 있다면 일어나지 않을 일이다. 아니, 세상이 다 알게 대놓고 떠들지만 않더라도 괜찮았을 일이다.
커밍아웃이 결국 나 편하자고 한 일이 되고 또 가족들에게 고통을 주는 결과로 발견될 때 가장 힘들고 괴롭다. 내 잘못이 아니라고 위로를 해봐도 가벼워지지 않는다. 세상이 바뀌지 않는 한 나와 내 가족은 그 짐을 지고 살아가야 한다. 결국 세상을 바꿔야만 한다는, 그러기 위해서 커밍아웃을 했다는 처음 그 마음으로 돌아온다.
엄마는 오늘도 성당에 나가 봉사활동을 하셨다. 예전과 똑같이 씩씩한 ‘안나자매님’으로 살고 계신다. 이런 말 어울리진 않지만 꼭 하고 싶다. “엄마, 미안해요.”
김조광수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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