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08.11 10:41
수정 : 2011.08.11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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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조광수의 ‘마이 게이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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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조광수의 ‘마이 게이 라이프’
양희은은 “누구나 사는 동안에 한번 잊지 못할 사람을 만나고 잊지 못할 이별도” 한다고 노래했다. 돌아보면 나에게도 그런 사랑이 있었다.
그를 처음 만난 건 10여년 전,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때였다. 그날은 운동권 후배의 입영 전야였다. 내가 남몰래 짝사랑하던 녀석이었는데, 좋아한다는 말 한마디 건네지 못했던지라 연거푸 술만 들이켰다. 소주 두 잔이 치사량인데 그날은 아마 한 병은 마시지 않았나 싶다. 2차를 가자는 사람들을 뿌리치고 종로를 혼자 걸었고 어느새 종묘공원까지 가게 되었다. 거기서 운명처럼 그를 만났다.
그는 웃통을 까고 벤치에 앉아 새우깡에 강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그게 왜 그리도 멋지게 보였는지 지금 생각하면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는 자석처럼 나를 끌어당겼다. 벤치 맞은편에 앉아 무어라 주저리주저리 기억도 나지 않는 이야기를 했고 난 그에게 해롱거렸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어떻게 왔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난 내 방에서 깨어났다. 어렴풋하게 떠오르는 건 그의 얼굴과 그가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란 것뿐이었다. 한여름 밤의 꿈처럼 가물거리는 그를 그렇게 놓치게 되는 것 같았다. 빨래를 하려다 주머니에서 쪽지를 발견하면서 삐뚤빼뚤 적힌 전화번호를 통해 다시 그와 연결될 수 있었다.
그는 매력적인 사람이었다. 착하고 순수했으며 눈물이 많았다. 아쉬운 게 있다면 주변 누구에게도 커밍아웃을 하지 않은 벽장 속 게이였다는 것이다. 그는 친구가 무척 많았는데, 난 그의 친구들에게 ‘친구’라고 소개돼야만 했다. 처음엔 그게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아쉬움은 커졌다. 그를 만난 지 3년이 되던 해, 그의 아버지께서 갑자기 돌아가셨다. 문상을 가는 게 당연했지만 난 그에게 가지 않겠다고 했다. 그의 가족들에게도 친구라고 소개되는 게 싫어서였다. 아버지를 잃고 힘들어하는 그에게 위로가 돼야 했지만 어리석었던 난 그렇게 하질 못했다. 그때 그는 묵묵히 내 마음을 받아주었다. 장례를 마치고 돌아온 그는 도리어 내게 미안하다고 했다. 용기가 없는 자신을 나무라며 눈물을 뚝뚝 흘렸던 그다.
그와 헤어진 건 술 때문이었다. 심성이 여린 그는 창작의 고통에 괴로워했고 그럴 때마다 술에 의지했다. 미대를 다니던 시절엔 재능이 있다고 칭찬을 많이 받았고 여러 공모전에서 실력을 인정받기도 했는데, 나와 사귀던 시절엔 공모전 입상은커녕 그림 한 점을 못 그리던 해도 있었다. 그럴 때 내가 위로가 되거나 도움이 되었으면 좋았겠지만 자존심이 강한 그는 나를 찾지 않고 술을 찾았다. 술은 우리의 사이를 벌려 놓더니 결국은 갈라놓았다. 술 때문에 만나서 사랑을 시작했는데 술 때문에 헤어지게 되었다.
내가 사회적으로 커밍아웃을 하면서 그가 곤란해진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된다. 커밍아웃은 꿈도 꿀 수 없을 만큼 소심한 그였는데, 갑자기 나타나 친구로 소개됐다가 몇 년 뒤 인사도 없이 사라진 나로 인해 친구들에게 아우팅이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만약 그랬다면 미안한 일이다.
김조광수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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