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09.08 14:01
수정 : 2011.09.08 14:01
김조광수의 ‘마이 게이 라이프’
“너처럼 친절한 남자는 처음이야.”
그녀가 내 사랑을 받아주기로 하면서 꺼낸 말이다. 그녀는 나의 첫 여자 연인이었다. 강의가 비는 시간에 그녀와 같이 다니면 참 좋았다. 우리는 나이도 같았고 좋아하는 것들도 비슷했다. 같이 할 수 있는 게 많다는 걸 알게 되면서 더 친하게 되었다. 혹여나 내 마음을 빼앗아갈지 모르는 남자아이들보다는 여자아이들과 어울리는 게 편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녀는 인기가 많았다. 얼굴이 예쁘기도 했지만 작은 체구에 가슴이 컸다. 어린 남자애들이 좋아할 타입이었다. 그런 그녀가 게이를 사랑하게 된 건 다 모자란 나 때문이었다.
학생운동을 하면서 고민이 많아졌다. 조직에서 받아주지 않을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나를 괴롭혔지만 어느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가 없었다. 고민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알려질 경우 조직에 큰 피해를 줄 수도 있었다. 엠티를 가서 한방에 같이 자는 것을 두고 ‘충격, 운동권 혼숙’이라는 제목을 뽑아 사회면 톱기사로 내보내는 언론들이 판을 치던 시절이었다. ‘운동권 호모 소굴’ 운운하는 기사가 나오는 끔찍한 상황이 예견되는 건 당연했다. 고민은 또 있었다. 혹시 내가 붙들려 끌려갔을 때 호모라는 이유로 가해질 모욕도 두려웠다. 동성애자는 수구꼴통이나 진보 어느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였다. 고민 끝에 고쳐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건 한 가지, 여자를 사귀는 거였다. 이왕에 사귀는 거라면 매력적인 여자였으면 했고 그래서 선택된 사람이 그녀였다.
작업은 고전적으로 시작되었다. “너랑 사귀고 싶다”는 쪽지를 그녀의 교재 안에 슬쩍 끼워 넣었다. 매일 보는 녀석이 보낸 쪽지에 그녀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다. 답은 금방 오지 않았다. 아무 일도 없는 척하는 시간이 일주일을 갔다. ‘아님 말고’란 마음으로 보낸 쪽지였지만 답이 없는 시간은 나를 초조하게 만들었다. 다시 쪽지를 보내야 하나 아니면 다른 여자를 찾아야 하나 망설이던 순간 불쑥 그녀에게서 언제 어디로 오라는 쪽지가 왔다. 한참을 기다려도 그녀는 나타나지 않았다. 휴대전화가 없던 30여년 전에는 무작정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바람맞았다고 낙담할 즈음에 그녀가 나타났다. 그러면서 한 말이 친절한 남자라는 거였다. 그렇게 동성애를 고쳐보려는 게이와 그걸 모르는 여자의 연애가 시작되었다.
우리의 연애는 순조로웠다. 그녀가 나를 참 많이 좋아해 주었다. 그 이유란 게 이랬다. 값싸고 예쁜 옷을 사려고 남대문시장을 뱅글뱅글 돌아도 투덜거리기는커녕 오히려 즐거워하는 남자는 내가 처음이었고 다른 남자애들은 사귀자고 한 순간부터 한 번만 자자고 징징거리며 졸라대기 일쑤였는데 난 그러지 않아서, 친절한 남자인 내가 점점 좋아진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의 연애는 오래가지 못했다. 이성 연인이 필요한 그녀에게 난 동성 친구 같은 남자였다. 눈물을 뚝뚝 흘리며 자기를 좋아하는 게 맞느냐고 묻던 그녀에게 난 이별을 고하고 말았다. 지금 생각해도 참 못난 짓이었다.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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