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10.06 11:41
수정 : 2011.10.06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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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조광수의 ‘마이 게이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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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김조광수의 ‘마이 게이 라이프’
서울 종로3가 뒷골목 이름도 거창한 낙원동에서 ‘프렌즈’라는 게이바를 하는 후배가 있다. 어릴 때부터 예쁘단 소리 많이 들었다는 그, 젊었을 때 뭇 게이들을 꽤나 울렸다는 그가 술집을 하게 된 건 반반한 얼굴 때문도 아니고 화류계 팔자를 타고난 때문도 아니다. 일종의 사명감 같은 거였다.
그는 나와 같은 부류, 운동권 게이다. 1980년대 끝자락에 대학에 들어가 자연스럽게 학생운동을 하게 되었고 인권운동으로까지 이어졌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동성애인권운동단체인 ‘친구사이’의 대표를 맡았고 방송에 얼굴 까고 나올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여서 숱하게 많은 인터뷰를 하기도 한 그였다. 그는 나처럼 동성애자임을 숨기고 괴로워하거나 이성애자가 되기 위해 위장연애를 하는 타입은 아니었다. 스물한살에 주변에 커밍아웃을 했고 많은 남자들을 거친 뒤 인생의 파트너를 만나 동거를 시작, 10년 넘게 해로하고 있는 모범적인 게이라고 할 수 있겠다. 언제나 당당하고 똑 부러지는 그가 술집을 차린 건 인권운동을 더 열심히 하기 위해서다. 그에게 ‘프렌즈’는 술을 팔아 돈을 버는 곳 이상의 의미가 있다.
게이바에 가면 일반 술집과는 다른 그 무엇이 있는데, 일단 남자들로만 꽉 차 있다는 것이 1번, 후끈한 열기가 남다르다는 것이 2번, 혼자 오는 손님이 많다는 것이 3번이다. 그는 3번에 주목했다. 이반친구가 하나도 없는 외로운 게이, 커뮤니티에 처음 나오는 초보 게이들에게 게이바는 그냥 술집이 아니다. 상담소고 치료소다. 그래서 게이바에는 삼삼오오 일행들과 함께할 수 있는 테이블보다 바텐더와 마주할 수 있는 바에 손님들이 더 많이 있는 게 흔한 풍경이다. 그의 술집에도 넓은 바가 있고 거기에서 그와 두 명의 바텐더가 외로운 게이들의 말벗이 되어 준다. 음악 소리보다 호탕한 그의 웃음소리가 더 크게 들릴 때가 많은 곳, 그곳에서 벽장 속에서 외로움에 떨고 있던 소심한 게이 여럿을 건져 올려 ‘친구사이’의 회원으로 만들기도 했다. 나이로는 내가 ‘친구사이’의 왕언니지만 데뷔(게이 커뮤니티에 나온 것을 뜻함) 연도로는 그가 최고참이다. 일전에 말했던 자미숙빈 중 빈의 반열에 오른 최상층 언니 중의 언니다. 다큐멘터리 <종로의 기적>에서 시골 게이 스파게티나에게 인생의 황금기를 선물한 이, 스승의 날에 꽃을 사다 줘야 한다던 이가 바로 그다.
그는 커밍아웃 전도사이기도 하다. 20대에 가장 잘한 일이 커밍아웃이라고 생각하는 그다. 그는 커밍아웃을 강요하지는 않지만 적극적으로 권장한다. 특히 가족에게 커밍아웃한 후배들에게는 꽃다발을 선물하며 축하해주는 문화를 만들었다. 수영하는 소모임 마린보이 멤버들을 이끌고 종로 한복판에서 핫팬츠 차림으로 퍼레이드를 하기도 했고 노래하는 소모임 지-보이스 단원들과 함께 대학로 공연장에 서기도 했다.
인생을 바꾸고 싶은 초보 게이들에게 이 벅찬 언니를 연결해 주고 싶다. 낙원동 ‘프렌즈’에 가면 그를 만날 수 있다. 문을 열고 들어가 호탕하게 웃는 이를 찾으면 된다. 참, 그가 품절게이란 걸 잊지는 마시라!
김조광수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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