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11.03 10:44
수정 : 2011.11.03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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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조광수의 ‘마이 게이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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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김조광수의 ‘마이 게이 라이프’
이 사람들의 이름을 아는가? 요한나 시귀르다르도티르, 기도 베스터벨레, 클라우스 보베라이트, 베르트랑 들라노에. 생소한 이름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이들도 있겠지만 국제 정치에 관심이 있다면 금방 알 수 있는 사람들이다. 다름 아닌 아이슬란드 총리, 독일 부총리, 베를린 시장, 파리 시장이다. 그들에게는 중요한 공통점이 있으니 모두 커밍아웃한 동성애자들이라는 것이다. 고로 커밍아웃한 동성애자를 총리, 시장으로 뽑은 시민들이 있다는 얘기가 된다. 우리와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지구촌 시민들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동성애자를 시장으로 맞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 방심하지 말라. 우리도 어느새 동성애자 국회의원이, 시장이, 대통령이 탄생할지 모른다. 지난 총선에 대한민국에서도 해외토픽 뉴스가 있었다. 대한민국의 정치 일번지라 불리는 종로에 커밍아웃한 레즈비언이 진보신당 후보로 출마했던 것. 결과는 낙선이었지만 그의 등장은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충분했다. 이제 대한민국도 동성애자임을 당당하게 밝히고 정치를 하는 사람이 탄생한 것이다. 아이슬란드도 독일도 프랑스도 처음엔 그랬다. 그렇게 시작해서 수도의 시장으로 동성애자를 뽑았고 동성애자 총리를 맞게 된 것이다. 우리라고 안 될 이유가 없다.
대학에 강의를 갔을 때 질문을 던져 보았다. 내년 선거에 동성애자 후보가 나온다면, 그의 이력이나 공약이 다른 후보보다 좋다면 그를 지지할 것이냐고. 동성애자 선생이 던진 엉뚱한 질문에 학생들은 부정적인 답을 했다. 그런데 재밌는 건 학생들의 태도였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자기는 지지할 수 있지만 당선은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 사회가 보수적이기 때문에, 아직은 시기상조 아니냐, 동성애자 연예인까지는 괜찮지만 동성애자 국회의원은 좀 곤란하다는 등 다양한 의견을 피력했다. 그런데 베를린 시장 아이슬란드 총리 얘기가 더해지면서 학생들의 생각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바로 내년은 어려울지 모르지만 차기나 차차기에는 가능할 수도 있겠다는. 물론 훌륭한 후보였을 때 말이다.
그때 한 학생이 손을 번쩍 들고 진지하게 물었다. “출마하는 동성애자 후보가 있겠어요?” 그러니 다른 학생들도 “맞아, 맞아” 하며 수군거렸다. 젊은 유권자들은 동성애자 후보의 출마 자체가 어려울 거라는 아주 비관적인 예상을 했다. 내가 지난 총선에 출마한 레즈비언 정치인에 대해 알려 주었더니 모두 처음 듣는 이야기라며 다시 토론을 이어 갔다. 그날의 토론 결과는 장밋빛은 아니었다. 대한민국에서 선거를 통해 동성애자가 공직에 진출하는 건 당분간 어려울 것 같다는 전망이 우세했다.
그렇지만 아무도 모른다. 내년 선거에 동성애자 후보가 나와 떡하니 당선될 수도 있다. 다이내믹한 한국 정치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란 없다. 그러니 이참에 생각 좀 해보자. 동성애자 국회의원을, 대통령을 맞을 준비가 되었는가? 때마침 동성애 인권을 공개적으로 지지한 후보가 수도 서울의 시장으로 당선되었으니 말이다.
김조광수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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