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11.17 14:41
수정 : 2011.11.17 14:41
|
김조광수의 ‘마이 게이 라이프’
|
[esc] 김조광수의 ‘마이 게이 라이프’
2011년 11월4일 밤, 서울 종로 거리를 걷던 커플이 갑자기 나타난 세 명의 남성에게 집단 폭행을 당했다. 커플은 그저 다정하게 걷고 있었을 뿐이었는데, 3명의 남성이 다가와서는 다짜고짜 욕을 하면서 주먹을 휘두르고 발로 차기 시작했다. 폭행은 한동안 이어졌고 비명 소리를 듣고 사람들이 몰려들자 폭행을 하던 이들은 빠르게 달아나 사라졌다. 폭행을 당한 커플은 얼굴에 온통 피멍이 들 만큼 처참한 상태였다.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에 시비가 붙은 것도 아니었고 그냥 일방적으로 폭행을 당했다. 이른바 묻지마 폭행 사건이다. 지난달 29일에도 종로에서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고 한다. 그때도 밤길을 걷던 커플이 갑자기 나타난 남성 3명에게 폭행을 당했다. 그 커플은 더 심하게 맞았다. 온몸에 멍이 들었고 지금도 숨을 쉴 때마다 갈비뼈가 아플 정도로 부상이 심한 상태라고 한다.
폭행을 한 남성들은 아직 잡히지 않았고 신원도 밝혀지지 않았다. 종로 거리에서 일어난 폭행이라는 것과 가해자가 3명의 남성이란 것, 폭행 방식이 비슷하다는 점에서 동일인의 소행일 수도 있다는 짐작이 가능할 뿐이다. 이 두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건 포털사이트 메인 화면에 기사로 올라오면서였다. 기사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고 순식간에 10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다. 살인 사건도 아닌 폭행 사건에 사람들의 관심이 쏠린 데는 다 이유가 있다. 피해자들이 동성애자였기 때문이다.
게이 커플을 향한 호모포비아 범죄가 서울 한복판에서 버젓이 벌어진 데 대해 사람들이 분노하고 경찰을 향해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는 것이었다면 그나마도 다행이었겠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않았다. 어떤 이는 성경에 근거해서, 또 어떤 이는 단지 싫다는 이유로 동성애를 죄라고 단정했다. “동물들도 하지 않는 비정상적이고 말도 안 되는 가증스러운 동성애, 동성에게 마음이 끌리면 그게 당연한 게 아니고 잘못되었다는 걸 일깨워줘야 한다.” “거리를 활보하는 죄인들은 맞아도 싸다.” 이런 혐오 발언들도 쏟아져 나왔다. 단지 이성애자가 아니라는 것 때문에, 동성을 사랑한다는 것 때문에 길거리에서 이유 없이 집단 폭행을 당하고 그것도 모자라 “맞아도 싸다”는 말까지 들어야 했다. 우리 사회가 이 정도로 몰지각한 수준이었다니! 모욕감과 슬픔, 분노가 치밀어 잠이 오질 않았다.
20년이 다 되도록 세상의 편견에 맞서 싸워왔다. 사람을 조직하고 단체를 만들고 영화를 만들고 노래를 하고 퍼레이드를 하고 시위를 해왔다. 그러는 사이 세상이 변하고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고 있다고 믿어 왔다. 동성애를 전염병이나 죄로 생각하지는 않는 사회가 된 줄 알았다. 최소한 대놓고 손가락질하며 욕하는 사람들은 없어진 줄 알았다. 아니, 다수는 상식적인 수준의 대응을 하는 사회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인간의 존엄성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혐오 범죄와 그것을 오히려 부추기는 혐오 발언들이 아무 거리낌 없이 쏟아지고 있는 곳, 2011년 대한민국의 서울에서 나는 커밍아웃을 하고 살아가고 있다.
김조광수 영화감독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