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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12.01 15:14 수정 : 2011.12.01 15:14

김조광수의 ‘마이 게이 라이프’

지금의 나를 아는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할지도 모르지만 난 우울한 아이였다. 초등학교를 다닐 때까지만 해도 친구들과 잘 뛰어놀았던 명랑한 아이였지만 사춘기를 겪으면서 급격하게 우울해졌다. 사춘기를 밝게 보내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는 내가 남자를 사랑하는 남자라는 걸 쉽게 인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친구들이 자기와는 다른 성에 눈뜨며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을 거칠 때, 난 나와 같은 성에 끌리는 사실에 당혹했고 남들이 그 사실을 알게 될까 두려워 움츠러들었다. 스스로도 인정할 수 없는 정체성을 갖고 살아야 한다는 건, 사춘기 소년에게 참으로 가혹한 것이었다.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가지 않고 버스를 탈 때가 많았다. 학교 앞에서 20번 버스를 타면 서울역으로 갔고 거기서 차를 돌려 우이동 종점으로 갔다. 버스요금 한번으로 두 시간 정도를 탈 수 있어서 좋았다. 우이동 종점에서 우리 집까지 또 두 시간 정도를 걸어야 했지만 거의 매일 그렇게 보냈다. 어떤 날은 학교에 가지 않고 온종일 버스를 타고 서울 곳곳을 여행하기도 했다. 결국 친구도 없는 외톨이가 되어갔고 성적이 형편없이 떨어지게 되었다. 외로웠지만 더 외로운 곳으로 나를 몰아붙였다. 어차피 나는 평범한 사람들과는 어울릴 수 없는 존재라는 생각에 스스로를 벌주었다. 150㎝도 안 되는 작은 소년이 그렇게 사춘기를 보냈다.

누구에게든 털어놓고 상의하지 그랬냐고 얘기해주고 싶을 것이다. 맞는 말이다. 그렇게 숨기고 괴로워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런데 누가 있었을까? 선생님께 얘기하면 괜찮았을까? 친구들에게 털어놓았으면 좋았을까? 아니면 부모님과 상의했으면 풀렸을까?

시도를 안 해본 건 아니었다. 초등학교 때, 선생님께 ‘호모’가 무엇인지 물었던 적이 있었다. 돌아온 답은 “나쁜 짓 하는 사람들이고 병 옮으니 가까이하면 안 된다”였다. 중3 때는 청소년상담소에 전화로 문의를 하기도 했다. 몇번을 전화했다가 끊고 다시 전화한 끝에 떨리는 목소리로 동성친구를 좋아하고 있다는 말을 했다. 전화기 너머에서는 “그러면 안 된다. 나쁜 짓이다. 여자친구를 사귀어 봐라. 교회를 다니면 좋아질 수도 있다”는 얘기를 했다. 나는 치료를 받아야 하는 사람, 나쁜 짓을 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어디서 옮은 건지 모르는 내 병이 싫었고 그걸 또 남에게 옮길까 봐 두려웠다. 손을 잡아 줄 사람이 필요했지만 더 얘기할 사람이 없었다.

고등학교 진학은 내게 기회를 주었다. 새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고 그중에 한 녀석이 나를 좋아해 주었다. 나 말고도 동성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건 큰 위로가 되었다. 동성애는 여전히 비밀로 해야 하는 것이었지만 그 비밀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생긴 덕분에 나는 수렁에서 헤어나올 수 있었다.

여전히 우울한 사춘기를 보내는 동성애자 청소년들이 있다. 그들이 나처럼 스스로를 벌주고 괴로워하지 않기를 바란다. 학교가 그들에게 손을 내밀어 주면 좋겠다.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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