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12.29 16:25
수정 : 2011.12.29 17:00
[매거진 esc] 김조광수의 ‘마이 게이 라이프’

난 어릴 때부터 안기는 걸 참 좋아했다. 다른 형제들은 업히거나 목말 타는 걸 더 좋아했지만 난 안기는 걸 훨씬 좋아했다. 아버지께서 “안아 줄까? 업어 줄까?” 하고 물으시면 “안아 주세요” 하며 달려가 안기곤 했던 기억이 지금도 새록새록 난다. 안기는 것에 비해서 업히거나 목말을 타면 내 키보다 더 높은 곳에 올라서 아래를 내려다볼 수 있는 장점도 있고, 또 시간을 생각해도 훨씬 더 이익인데도 난 안기는 걸 좋아했다. 난 지금도 안아주거나 안기는 걸 좋아한다. 뭐, 지금은 40이 넘은 나이니만큼 업힐 수는 없는 처지가 되었지만 말이다.
사람이 사람을 안으면 서로의 심장박동을 느끼게 되는 아주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다. 이건 업히는 행위에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귀한 것이다. 난 그걸 좋아했던 것 같다. 따뜻하게 전해 오는 체온과 함께 느껴지는 심장박동은 어느새 상대방과의 거리를 바짝 좁혀 줘서 행복감을 준다.
“무료로 안아드려요”(프리 허그) 운동을 알 것이다. 오스트레일리아 청년이 시드니의 거리에서 ‘free hugs’란 팻말을 들고 지나가는 사람들과 포옹을 하기 시작하면서 확산된 운동이다. 처음에는 비웃거나 정신 나간 사람 취급을 하기도 했지만, 서로를 안으며 위로나 격려를 받고 싶은 사람들이 생겨났고 많은 사람들이 팔을 벌려 그와 포옹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장면을 카메라에 담아 동영상 공유 사이트인 유튜브에 올렸다. 그것을 본 세계의 누리꾼들이 자신의 블로그에 담아 오거나 다른 동영상 공유 사이트에 올리면서 세계적인 화제로 떠올랐다. 그러면서 이 운동은 곧 전세계로 확산되었다. 유튜브에는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프리 허그’ 동영상이 올라와 있다. 처음 동영상을 보았을 때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종종 볼 수 있는 흔한 일이 된 지 오래다.
동영상을 보면 처음에 머뭇거리던 사람들이 용기를 내어 팔을 벌리고 달려가 끌어안고 이내 행복한 표정이 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곳에는 남녀노소나 인종의 차이가 없다. 그저 안는 행위만으로 서로 기쁘고 행복해진다는 걸 발견하게 된다. 이 운동을 처음 시작한 후안 맨은 “사람들이 웃고 행복해하는 것을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의 바람처럼 그의 행동은 사람들을 감동시켰고 또다른 그가 생겨나 세계 곳곳에서 새로운 감동을 만들고 있다.
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회원들이 ‘게이 프리 허그’라는 이름으로 서울 시청 앞, 인사동 등에서 같은 운동을 진행한 적이 있다. 시작하기 전에는 호모포비아들에게서 봉변을 당할지도 모른다고 걱정하기도 했는데, 웬걸 봉변은커녕 수많은 사람들이 게이들을 안으며 행복해했다. 서로를 안아주는 따뜻한 행위에 이성애자와 동성애자의 구분은 없었다. 내친김에 내년에는 더 많은 사람들과 안겠다는 포부를 밝히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차별 없이 따뜻하게 안아주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조금이나마 더 행복해질 수 있게 말이다.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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