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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1.12 14:22 수정 : 2012.01.12 14:22

김조광수의 ‘마이 게이 라이프’

춤샘(선생)이라고 불리다가 요즘은 코러스보이로 불리는 후배가 있다. 댄스스포츠 초급교사 자격증까지 딴 춤꾼으로 이반들의 엠티에 초청되어 춤을 가르치면서 춤샘이 되었다. 그 덕분에 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회원들은 엠티를 갈 때마다 공놀이 대신 운동 삼아 춤을 추게 되었고 퀴어문화축제 퍼레이드에서도 춤추며 행진할 수 있었다. 종로 한복판에서 무리를 지어 춤추는 게이들을 보았다면 그 맨 앞자리에서 끼 떨며 현란한 춤사위를 선보이던 그를 보았을 것이다.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에 가수 장미화의 노래와 춤에 반해서(이 대목에서 그의 나이를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할 수 있을 게다) 춤추기 시작했다는 그다. 어릴 때부터 발랑 까진 면모를 보이던 그는 마이클 잭슨과 엄정화를 거치면서 본격적으로 춤에 빠지게 되었다. 하지만 그때부터 사람들 앞에 나서서 춤을 추었던 것은 아니다. 그저 자기 방에서 즐기던 혼자만의 놀이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던 그가 골방에서 벗어나 사람들 앞에서 춤추기 시작한 건 이태원 게이 클럽에 드나들기 시작하면서였다. 그곳에서 자기처럼 춤추기 좋아하는 게이들을 만났고 그들 앞에서 춤을 뽐내게 되면서 행복했다. 또 그렇게 춤을 추면서 자신이 게이라는 걸 스스럼없이 드러내게 되었다. 하지만 그가 춤샘이 된 건 춤추는 걸 좋아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안타깝게도 의과대학을 나와 의사가 되었다. 가수가 되거나 배우가 되었으면 딱 좋았을 그가 의사가 된 건 8할이 입시 위주의 우리 교육환경 때문이고 2할이 부모님 뜻을 거스르지 못하는 착한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여하튼 어찌어찌하여 의사가 된 그는 자기가 갖고 있는 끼와 의사라는 직업 사이에서 방황을 거듭한 끝에 본격적으로 춤을 배우기 시작했고 결국 댄스교사 자격증까지 손에 쥐게 되었다. 그 이후 그에게는 큰 변화가 생겼다. 혼자 춤추는 것과 사람들을 가르치는 건 큰 차이가 있었다. 춤을 통해 사람들과 호흡하면서 행복감을 더해가던 그는 친구사이 내부에 춤추는 소모임을 만들어 본격적인 춤샘이 되었다. 음주가무라면 빠질 수 없는 게이들이 호응을 안 할 리 없었고 인권운동단체에 춤바람이 불었다.

그렇게 또 몇 년이 흘렀다. 춤에만 만족할 수 없었던 그는 게이 합창단 지-보이스를 만들어 춤과 노래를 섭렵하려는 꿈에 도전했다. 그는 합창단을 만들어 단장으로 활동하면서 끼스럽게 노래하며 춤추는 게이들을 사람들에게 선보이려고 애썼다. 그런 노력 때문에 지-보이스는 역동적인 합창단이 될 수 있었다. 해마다 가을에 공연을 하는데, 3년 연속 전석 매진이라는 놀라운 기록을 세울 만큼 관객들의 호응도 뜨겁다. 그러면서 그를 부르는 호칭도 춤샘에서 코러스보이로 자연스레 바뀌었다.

그가 궁금하다면 지-보이스 공연을 보러 가면 된다. 정기공연은 가을에 딱 한번뿐이지만 크고 작은 인권행사의 단골손님이 된 지 오래다. 새해 그의 소망이 있다면 지-보이스를 외국에 소개하는 것. 그의 바람이 성사되어 우리나라 게이들의 춤과 노래 실력을 만방에 떨치게 되길 기대한다.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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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김조광수의 ‘마이 게이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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