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1.26 14:16
수정 : 2012.01.26 14:21
[매거진 esc] 김조광수의 ‘마이 게이 라이프’
밥을 급하게 먹은 게 화근이었다. 서두르다 보면 나쁜 일이 생긴다. 빠르게 우걱우걱 씹다가 윗니와 아랫니가 부딪히며 뚝 소리가 났다. 통증이 와서 얼른 확인해보니 아래 어금니 옆에 붙은 이가 흔들렸다. 이런 이런. 걱정이 되어 치과에 갔는데, 의사선생님이 그렇게 심한 것은 아니라며 안심을 시켜 주었다. 휴, 다행이다. 그런데 의사선생님이 뜻밖의 소리를 했다. 이가 흔들리는 것보다 부정교합을 치료하는 게 급선무라고.
재작년 가을에 아는 사람의 소개로 만나 알게 된 치과선생님. 그때는 내 이를 꼼꼼히 보시고도 양치 잘하고 정기적으로 스케일링을 하라는 말밖에 안 하셨는데, 부정교합을 치료하라니. 그것도 시급하게. 이유를 물으니 조심스럽게 말하신다. 그때는 돈과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사람인 내게 그 말을 할 수가 없었다고. 그사이 <조선명탐정>으로 흥행을 했으니 솔직하게 얘기할 수 있는 거라고. 수술비가 수천만원에 달한다는 말과 함께. 헉.
난 유전적인 부정교합이다. 보통사람들은 윗니가 아랫니를 덮지만 나는 아래턱이 많이 길어서 아랫니가 윗니를 덮는다. 이른바 합죽이. 언뜻 보면 잘 모르지만 자세히 보면 알 수 있다. 어릴 때부터 합죽이라 불리는 게 싫어서 그렇게 안 보이려고 입을 꾹 다물지 않고 살짝 벌리고 있게 되었다. 하지만 뭘 씹을 때는 영락없이 합죽이로 돌아간다. 그래서 다른 이들과 식사를 할 때는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다. “먹는 모습이 할머니 같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그 소리도 들을 때마다 싫었고 감추지 못한 자신을 책망했다. 부정교합이 아닌 이들이야 그게 뭐 그리 문제냐 싶을지 몰라도 내게는 치명적인 약점이다. 사진을 찍을 때도 웃지 않는다. 웃으면 바로 티가 나니까. 매체와 인터뷰할 때마다 사진기자들이 웃으라고 했지만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웃지 않았다. 합죽이로 태어난 게 싫었고 그 외모 콤플렉스에 시달리며 살았다. 그렇게 48년을 살았는데, 이제 와서 치료를 하란다.
육군 병장이었던 87년에 입이 벌어지지 않는 악관절 장애로 국군수도병원에 후송된 적이 있었는데, 그때 구강외과 군의관도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공짜였는데 하지 않았던 건 위험한 수술이라 죽을 수도 있다는 군의관의 말 때문이기도 했지만, 수술 뒤에 외모가 몰라볼 정도로 확 바뀐다고 했기 때문이다. 합죽이로 외모 콤플렉스를 갖고 사는 것도 싫었지만 다른 얼굴로 사는 건 더 싫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정말로 수술을 해야 하는가 보다. 그대로 두면 50대 중반쯤 어금니가 다 빠질 수도 있다고, 그만큼 심각하다고 한다. 소견서를 들고 대학병원에 갔는데, 결과는 같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의술이 발달해서 죽을 만큼 위험한 수술은 아니게 되었다는 것. 뼈를 깎아내는 고통도, 수천만원인 수술비도 걱정이지만, 여전히 나를 고민하게 만드는 건 다른 얼굴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더 예뻐질지도 모르니 확 해버려? 이참에 다른 인생을 살아봐? 외모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중년 게이, 큰 고민에 빠졌다. 잠이 오질 않는다.
<끝>
김조광수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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