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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11.04 13:16 수정 : 2010.11.25 15:06

[매거진 esc] 탁정언의 ‘관계를 푸는 언어의 기술’

“말로는 뭘 못하겠어요?” 갑자기 그가 나의 제안을 짓밟아버렸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의 가족이기에 무장해제 상태에 있던 나는 그만 당황해서 할 말을 잃었다. 그는 계속해서 나에 대한 독설의 수위를 높여갔다. 이미 여러차례 모임을 미루었던 나는 그에 의해 ‘말만 앞세우는 사람’으로 몰리고 있었다. 곧 분위기가 얼어붙었고 모두들 얄미운 구경꾼이 되어 그와 나를 구경했다. 자, 이제 탁정언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나는 그가 왜 나에게 적대적이 되었는지 생각을 더듬었다. 아니, 생각 이전에 기분이 나빴다. 마음은 최대한 까칠한 말로 반격을 가하라고 부추겼다. 그러나 마음이 하라는 대로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랬다가 얼마나 많은 실수를 저질렀고 후회와 자학으로 불면의 밤을 지새웠던가? 나의 오랜 말실수와 관계 파탄 경험상, 이런 경우 전략이란 것은 무용지물이 된다.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짜면서 의견이 충돌해도 짐승처럼 싸우는 건 매한가지다. 삶이란 의식뿐 아니라 무의식 차원에서 반복되는 현상(지그문트 프로이트)이며, 무의식에 있는 모든 것이 사건이 되어 밖으로 나올 수 있기(카를 구스타프 융) 때문에 의식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언어 전략으로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이때야말로 외부가 아니라 내부의 나를 다스리는 ‘쿠션 전략’이 필요하다. 우선 천천히 깊게 호흡을 들이마셨다가 내쉬면서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을 조화롭게 만든 다음, 한발 떨어져서 나의 내면을 바라보아야 한다. 바깥에서 나를 공격하는 그가 아니라, 나의 내부에서 그가 던진 말의 씨로 인해 폭발 직전으로 자라난 에너지를 가만히 바라보면… 얼마나 사납게 이빨을 드러낸 채 으르렁거리고 짖어대는지 섬뜩할 정도다. 그 개가 바로 외부에서 자극이 오면 바로 반응을 하는 저 유명한 ‘파블로프의 개’가 아니던가? 그러나 나는, 우리는 인간이다. 그래서 자극과 반응 사이에 선택할 자유(빅터 프랭클), 즉 쿠션을 두고 내부를 다스릴 수 있는 것이다.

“나는 파블로프의 개가 아니다!” 나는 그를 바라보면서 나지막하게 나의 내면에서 끓어오르는 저급한 에너지에게 말을 했다. 그 한마디에 그것이 꼬리를 내리고 벌렁 누워 배를 드러내고 아양을 떨기 시작했다. 그사이 바깥의 화제는 나의 제안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탁정언 카피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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