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0.12.16 11:31
수정 : 2010.12.16 11:31
[매거진 esc] 탁정언의 ‘관계를 푸는 언어의 기술’
“머리가 긴 게 어때서?” 아들 녀석은 아빠를 한번 힐끗 쳐다보곤 한마디 까칠한 말을 던졌다. 뭔가 꼬여서 삐딱했다. 모처럼 휴일을 맞아 아들과 대화를 나누겠다는 심사로 방을 노크했는데…. ‘머리가 많이 길다’는 말로 대화에 기름칠하려다 그만 뜻밖의 기습을 당했다. 사춘기 녀석의 삐딱한 말 폭탄 한 방을 맞고는 가슴이 뻥 뚫려버렸다. 어디서 버릇없이…. 냄비 같은 감정은 당장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라고 들들 끓어올랐다. 또 감정 반대편에서는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게 설명을 해야 한다고 이성이 냉정한 체 잘난 척을 했다.
내가 마케팅과 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 잔뼈가 굵으면서 경험하고 배운 것은 감정과 이성 둘 다 위험하다는 것이다. 데이터와 프로세스를 무시하고 본능이 시키는 대로 직관적 감정으로 고객에게 접근했다 얼마나 많은 화를 불러왔던가? 논리는 없고 기분에 좌우되는 감정 커뮤니케이션은 사적인 기분으로 공적인 커뮤니케이션을 먹통으로 만들곤 한다. 우리는 우리들 머릿속 ‘뱀의 뇌’(경영 컨설턴트 마크 굴스턴)를 조심해야 한다.
그렇다고 논리만 내세웠다가는 역시 쓴맛을 보기 십상이다. 데이터를 충분히 확보하고 다각적으로 분석하여 도출한 확고한 결론을 논리정연하게 설득했는데도 안되는 일이 얼마나 많던가? 사람은 논리적으로 생각할 때는 이성을 지배하는 좌뇌가 작동하지만 최종 의사결정을 할 때는 감정을 지배하는 우뇌가 작동한다(심리학자 하워드 가드너)는 연구 결과를 알아둘 필요가 있다. 내가 일을 통해 배운 지식과 경험 중에 확실한 것은 인간은 설득당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설득당한 것을 ‘졌다’고 표현하는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세상이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절대로 관계를 나쁘게 만들지 말아야 할 상대라면 설득 커뮤니케이션 따위는 버리는 편이 낫다. 차라리 주어진 상황과 관계없는 엉뚱한 말을 하는 쪽이 더 유리하다. ‘사오정 전략’이라고 할까?
“꼬리가 긴 게 어떠냐고? 그럼 밟혀, 인마.” 나는 사오정처럼 말을 하고는 아들의 방을 나왔다. 한나절이 지나고 이번에는 아들이 내 방을 노크했다. “아빠, 이 머리 어때?” 아들은 이발을 했다.
탁정언 카피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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