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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2.10 13:29 수정 : 2011.02.10 13:29

[매거진 esc] 탁정언의 ‘관계를 푸는 언어의 기술’

“언제까지 전세로 떠돌겠나? 올핸 꼭 내 집을 마련하게.”

그것은 분명 덕담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정말 덕담이었을까? 어느 누가 좋아서 월세, 전세로 떠돌겠는가. 하루가 다르게 전셋값이 치솟는 아수라장 속을 누비며 셋방살이 떠돌던 명절 어느 날이었다. 얼떨결에 나에게 선물로 주어졌던 그 덕담 한마디는 명절 연휴를 우울 모드로 바꿔버렸고 우리 부부를 맹렬한 부부싸움으로 몰고 갔었다. 아직까지 그 덕담과 덕담을 선물한 친척을 잊지 않고 있으니…. 쩨쩨하고 옹졸하다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아무리 친인척이라는 페르소나를 쓰고 있다 해도 덕담이 악담이 될 수 있으니 말조심해야 한다. 내 집을 장만해라, 나이 더 들기 전에 결혼해라, 하나만 낳아라, 명문 대학에 들어가라, 취직을 해라, 승진해라…. 분명히 덕담을 했는데 당사자가 실직했다면, 실연했다면, 불임 부부라면, 9등급이라면, 99번째 이력서를 쓰고 있다면, 명퇴자라면, 악담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분명히 ‘가르릉’이라고 덕담을 했다 해도 ‘으르렁’ 악담으로 받아들인다면? 그래서 명절이 부담스럽고 짜증스러워 피하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가까운 관계일수록 덕담이 악담 되어 마음에 각인되면 지울 수 없는 상처는 어떠한 말로도 관계가 되살려지지 않는 것이다.

소라고 해서 다 같은 소가 아니기 때문에(언어학자 S.I. 하야카와) 아무리 윗사람이라고 해도 덕담을 할 때는 받아들이는 상대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알아야 한다. 일 년에 한두 번 만나는 친인척 관계라고 들리는 소문이나 풍문을 따라 괜히 넘겨짚지 말고 추상적인 덕(德)을 보여주는 것이 덕담의 예(禮)일 것이다.

“요즘 잘나간다며? 능력 좀 나눠주고 살아라.”

오래전 악담 같은 덕담을 해서 부부싸움을 하게 만들었던 그분의 덕담에 또 가시가 보였다. 아니면 듣는 나의 마음이 가시밭일까?

“요즘 어렵다는데, 장사 잘해서 부자 되세요.”

관계를 살리려면 그렇게 말하지 말았어야 했다. 유전자를 나눈 관계를 생각해서 그렇게 말해서는 안 되는데, 어긋난 마음 앞에서는 지식과 경험, 노하우도 소용이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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