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04.07 14:27
수정 : 2011.04.07 14:27
[매거진 esc]탁정언의 ‘관계를 푸는 언어의 기술’
“아니, 그것도 모르면서 어떻게….”
몰라서 물어본 건데, 원청업체 책임자는 그것도 모르냐는 식의 싸늘한 한마디 말로 속을 죽이기 일쑤였다. 의욕적으로 일을 시작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의 죽이는 한마디 말이 암초였다. 나는 ‘그것도 모르면서 어떻게…’라는 말의 말없음표에 숨어 있을 ‘이렇게 큰일을 하겠는가?’라는 의중을 헤아리다 기가 죽어 버렸다. 그러자 일이 표류하기 시작했다.
왜 삐딱한 걸까? 다른 전문가를 점지하고 그와 함께 일하려고 했는데 나로 결정되는 바람에 마음이 뒤틀린 걸까? 관계를 풀고 일을 진행시킬 방법을 찾다 생각은 상상으로 공상으로 망상으로 떠돌아다녔다. 스태프들은 술자리를 갖자고 재촉했지만 술로 오히려 관계가 나빠져 일을 그르친 경험이 많았기 때문에 거부했다.
그때 그 말 한마디에 얼마나 짓눌렸던지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 속 죽이는 한마디가 떠올랐고 이어 굴욕감이 밀려왔다. 다들 나만 바라보고 있는데 마음은 잠수 탈 궁리만 했다. 그 회사로 가는 길에는 도망가려는 마음을 잡기 위해 책을 붙들고 늘어졌다. 그때 한 문장이 눈을 뚫고 바로 가슴으로 들어왔다.
“‘아니면’이라는 악령에서 벗어나 ‘그리고’라는 영신을 맞아들여라!”(짐 콜린스) 나는 경영 전문서적에서 해법을 찾고 말았다. ‘아니면’이라는 악령은 바로 나의 인간관계와 일을 망치는 악령이었다. 친구가 아니면 적이다, 내 편이 아니면 남의 편이다, 돈 아니면 자존심이다. 이렇게 ‘모 아니면 도’라는 식으로 일과 인간관계를 맞춰놓고 일을 하는 바람에 그렇게 힘들었을 것이었다. 그날 정식으로 교육을 신청해서 새파란 신입사원들 틈에 끼어 연수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역시 전문가는 다릅니다. 그것도 몰랐으면서 어떻게….”
마침내 성공적으로 일을 끝내고 자축하는 자리에서 들어보니 그것은 원청 책임자의 언어습관일 뿐 아무 의미도 없었다. 누군가의 언어습관을 오해하고 혼자서 상상으로, 공상으로, 망상의 공간을 떠돌게 된다면 관계도 관계려니와 될 일도 안되는 것이었다.
탁정언 카피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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