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0.12.02 11:55
수정 : 2010.12.02 11:55
[매거진 esc] 아저씨의 대중문화 분투기
아내가 며칠 전 재즈보컬리스트 나윤선(41)의 공연을 보고 싶다고 할 때만 해도 난 좀 뜨악했다. 그가 <교육방송>의 ‘스페이스 공감’이나 <한국방송>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간혹 나와 대중들에게 제법 알려진 스탠더드 재즈곡을 주로 부른 탓인지 썩 매력 있는 재즈가수로 인식하지 못한 것이다. 어쩌면 내가 요즘 또다른 재즈가수 말로(39)의 목소리에 푹 빠져 있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동백아가씨’ ‘빨간 구두 아가씨’ 등 널리 알려진 한국 전통가요를 재즈로 멋지게 편곡해서 들려준 지난 10월 그의 마포아트센터 공연 이후 난 그의 시디 <동백아가씨>를 사서 10번쯤은 들은 것 같다.
솔직히 설렘이나 기대보다는 아내에게 봉사한다는 기분으로 참석한 지난 27일 밤 서울 엘아이지아트홀 나윤선의 콘서트는 예상을 훨씬 뛰어넘어서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허스키한 목소리가 매력인 말로와는 달리, 청아한 목소리 자체를 하나의 악기를 사용하는 듯한 그의 실험적인 음악은 100여석 규모의 소규모 공연장에 딱 어울렸다. 마치 역사적인 순간에 참여했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그는 대표적인 헤비메탈그룹 메탈리카의 노래와 샹송, 강원도 아리랑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아방가르드적인 재즈 선율로 해석해 자유자재로 넘나들었다. 베이스, 색소폰, 하프 등 프랑스 연주자와 하루이틀 만에 호흡을 맞췄다는 그의 설명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이날 공연은 완벽했다.
공연 뒤 아내와 난 이날 공연 곡 상당수가 수록된 제7집 앨범 <세임 걸>(2010년), <부아야주> (2008년), <메모리 레인>(2007년) 3장을 구입해 나윤선에게 사인도 받고 사진도 같이 찍었다. 7번째 앨범 <세임 걸>은 독일 언론에 의해 ‘올 시즌의 발견’이란 찬사를 들었던 6번째 앨범 <부아야주>보다 음악적으로 한층 더 깊어진 느낌이 들었다. 그의 시디를 뒤늦게 듣고서 그의 진가를 몰라봤다는 미안한 마음이 진하게 들었다.
말로는 한국에서, 나윤선은 유럽에서 각기 다른 재즈인생을 펼치고 있다. 그렇지만 마흔 안팎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보이고 있다. 두 사람의 진보에 박수를 보낸다.
김도형 <한겨레> 문화부문 편집장/트위터@aip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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