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03.31 10:27
수정 : 2011.03.31 10:27
[매거진 esc] 아저씨의 대중문화 분투기
얼마 전 올해 아카데미상 4관왕을 차지한 영화 <킹스 스피치>를 봤다. 보길 잘한 것 같다. 약간 과장하면 최근 몇년간 본 최고 수준의 영화 가운데 한 편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특히 언어장애를 겪는 영국 왕 조지 6세(콜린 퍼스)가 1939년 대독일 선전포고 방송을 ‘무사히’ 마치고 각료들의 악수세례와 국민의 환호를 받는 마지막 장면은 더없이 진한 여운을 남긴다.
제2차 세계대전 개전을 알리는 선전포고의 엄중함보다는 조지 6세가 제대로 연설을 할지 조마조마하게 지켜보는 당시 영국의 모습과 분위기가 묘한 공감을 낳는다. 내가 마지막 장면에 빠져들었던 것은 나 자신을 투영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크리스마스 등 중요한 순간에 연설을 하려 했으나 그때마다 실패를 한 조지 6세의 내면의 콤플렉스는 남의 일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부서장으로서 가장으로서 나는 내가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를 분명히 전달했는가? 돌이켜보면 난 결코 잘해온 것 같지 않다. 나 스스로도 적지 않은 내상을 입었다고 엄살을 떨고 있으니까. 어쩌면 조지 6세에게 격려와 용기를 불어넣으며 말더듬기의 근원을 치료해주는 괴짜 언어치료사 라이오넬 로그(제프리 러시) 같은 인생의 멘토가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보다못한 아내가 요즘 들어 부쩍 멘토를 자처하고 나선다. “당신은 인생을 날로 먹으려 한다”는 그의 말이 비수로 돌아온다. 틀리지 않은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일 용기가 없다. 세상은 온통 멘토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듯하다. <위대한 탄생>만 봐도 5인5색의 멘토가 등장하지 않는가. 트위터에서 소설가 이외수를 따르는 60만명 이상의 팔로어들은 그를 일종의 멘토로 삼는 듯하다.
그러나 성공시키는 것만이 멘토의 역할이라면 그런 멘토가 반드시 필요한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이명박 대통령과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의 관계를 보시라. 이 대통령은 정치적으로 좌절을 겪을 때 더 큰 뜻을 품으라는 최 위원장의 격려를 밑천 삼아 큰 성공을 거뒀다고 한다. 그러나 이 대통령의 대국민 메시지 전달 방법은 요령부득에 일방적이기까지 하다는 느낌이다. 적어도 라이오넬 로그와 같은 멘토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어쨌거나 난 멘토 없이 가기로 했다. 맨땅에 헤딩하는 정신으로. <끝>
김도형 선임기자/트위터 @aip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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