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0.10.07 14:33
수정 : 2010.11.25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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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즈드 프로젝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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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싱글 앤 더 시티
명절 연휴, 시집 안 가느냐는 융단폭격에 초토화된 채 가까스로 대피했다. 골드미스의 방공호는 신라호텔. 고향 집 기름 냄새며 노처녀 들볶는 잔소리를 떠나 호텔방의 묵직한 여백에 몸을 묻으니 천국이다. 혼자 사는 내 집도 이렇게 단정하면 얼마나 좋을까? 방에는 최소한의 세간만 두고, 테이블 위엔 메모지와 볼펜만 놓고 살면 글이 퐁퐁 샘솟을 것 같다.
꿈꾸던 싱글의 삶은 <인 디 에어>에서처럼 단출한 여행가방 속에 쏙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런데 내 인생은 어째 제트세트족은커녕 보따리를 이고 진 방물장수. 10년째 자취방을 전전하며 살림만 늘려온 쇼핑중독 싱글의 최후는 무시무시한 과적 화물차를 모는 유목민 신세다. “아가씨는 직업이 배우요?” 옷이 너무 많다고 이삿짐센터 직원에게 이런 얘기도 들었다. 하지만 아저씨, 저는 옷만이 아니라 책도 시디도 그릇도 많으니 어쩌면 좋죠? 물건지옥에 빠진 내 생활을 구원해 줄 수 있는 건 오직 하나, 벼룩시장뿐이었다.
안 쓰는 물건은 아름다운 가게에 기증하면 된다고들 쉽게 말한다. 하지만 쿨하지 못해서 미안해. 내 컬렉션을 이룩하느라 들인 돈과 시간이 얼만데! 이윤을 남기자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물건의 가치를 알아볼 사람이 데려가서 귀하게 여겨주면 좋겠단 말이지. 그렇다고 블로그로 온라인 플리마켓을 열 정도로 부지런하지도 못한 내가 선택한 방법은 중고판매 아웃소싱이다. 홍대 앞에 있는 예쁜 숍 ‘유즈드 프로젝트’(used project)에서는 1만원의 연회비를 내면 물건을 위탁해서 팔 수 있다. 무인양품에서 일하던 남녀가 만든 잡화 쇼핑몰 ASA245(www.asa245.com)의 ‘뉴 리사이클’ 코너는 흥미로운 인물들의 취향이 담긴 컬렉션을 소개한다. 나는 여기서 지난 2주 동안 아오이 유 사진집과 딘 앤 델루카 에코백, 빈티지 원피스 등을 팔아서 5만원 상당의 수입을 올렸다. 물건 팔아 번 돈으론 파스타 접시를 살까, 프라이타크 가방을 살까 고민중. 아아 누가 나 좀 말려주세요!
황선우/<더블유 코리아> 피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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