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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1.13 11:40 수정 : 2011.01.19 22:32

김도훈 제공

[매거진 esc] 싱글 앤 더 시티

항상 형광등이 싫었다. 핵전쟁 이후 지하로 숨어든 인류를 다루는 에스에프(SF) 영화의 무대처럼 푸르딩딩하게 빛나는 색깔도 싫었고, 호러영화의 한 장면처럼 끔뻑끔뻑거리다 켜지는 모양새도 미웠다. 형광등이 세상을 지배하기 시작한 건 백열등이 전기를 많이 잡아먹고 친환경적이지 못하다는 의식이 생기면서부터다. 사실이다. 하지만 요즘은 따뜻한 빛을 발산하면서도 저렴하고 친환경적인 삼파장 전구도 많다. 굳이 형광등을 사용해야 할 이유가 더는 없는데도 한국은 여전히 형광등 애호국가로 남아 있다.

형광등 애호사회에 신물이 난 나는 최소한 집에서만은 형광등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이사 간 아파트의 천장은 이미 형광등이 지배하고 있었다. 전셋집에서 살면서 돈 들여 천장을 시공할 생각은 꿈에도 없었던 나는 대안을 찾아냈다.

거실을 따뜻한 빛으로 장식할 수 있는 플로어램프를 구입하는 것이었다. 한동안 저렴한 램프를 검색하다가 이케아의 플로어램프를 보는 순간 사랑에 빠졌다. 몸체가 자작나무로 된 이 커다란 램프는 희한하게도 몸이 제멋대로 구부러진다. 디자이너는 스웨덴의 여성 디자인 그룹인 ‘프론트’였다. 그러니까 이건 에이치앤엠(H&M)과 랑방, 유니클로와 질 샌더처럼 일종의 컬래버레이션 가구였던 셈이다. 한창 뜨는 디자이너의 가구를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는 환상까지 충족시켜 줄 이 램프는, 도착하자마자 궁색한 자취방 거실의 중심이 됐다.

형광등으로도 불편한 건 없는데 굳이 삼파장 전구를 단 플로어램프를 사야 할 이유가 뭐냐고? 당신이 매일 집 안을 정리할 만큼 부지런하지 못한 독신남이라면 정말이지 중요한 두가지 이유가 있다.


김도훈 싱글 앤 더 시티
첫째, 집 안 정리 착시효과다. 플로어램프는 조금 멀리 떨어진 물건에까지 직접적으로 빛을 내리쬐지 않는 덕에 어질러놓은 가재도구도 묘하게 정리가 된 것처럼 보인다.

둘째, 미모 착시효과다. 형광등이 선명하게 드러내는 얼굴의 잡티와 주름과 기름기는 플로어램프 아래서 모두 사라진다. 애인을 집으로 초대해 플로어램프를 켜는 순간 관계가 진전될 확률은 훨씬 높아질 게다. 우린 이걸 ‘조명발’이라고 부른다.

김도훈/<씨네21>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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