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02.17 09:54
수정 : 2011.02.17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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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아트로 집 꾸미는 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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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싱글 앤 더 시티
아트를 사고 싶었다. 나도 안다. 이런 말은 뉴욕 소호의 월세 수천달러짜리 로프트에 사는 여피족이나 입에 꺼낼 만한 소리라는 걸. 개를 끌고 산책을 나갔다가 근처 갤러리에 들러 요즘 한창 뜬다는 신인 아티스트의 그림을 단돈 3000달러에 사서 집으로 돌아오는 그런 인간들 말이다. 나로 말하자면, 이 월급으로는 아트는커녕 국내 유명 갤러리가 제작하는 아트 포스터 하나 구입하는 것도 부담스럽다. 가만 생각해보니 아트 비스무리한 걸 하나 구입한 적은 있다. 칸영화제 출장을 갔다가 해변에서 꽃이나 바다, 배 같은 걸 작은 캔버스에 그려서 파는 중국인 화가의 그림을 샀다. 가격은 35유로. 물론 그건 엄밀히 말하자면 아트가 아니다. 아트가 어떤 조건으로 아트가 되는지는 모르겠으나, 모든 그림이 아트가 아니라는 것 역시 명백한 사실 아니겠는가.
그래도 아트가 사고 싶어진 나는 이베이로 구입 가능한 가격대의 아트 복제품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팝아티스트들의 작품이라면 원본이든 카피든 큰 상관은 없을 터였다. 그런데 복제품의 가격도 만만치가 않았다. 영국의 팝아티스트 데이미언 허스트가 전시에서 벽지로 썼던 나비 모양 벽지는 손바닥만한 크기에 몇백달러였다. 자기 작품을 캐릭터 상품화 잘하기로 유명한 일본 팝아티스트들의 작품을 검색했다. 무라카미 다카시의 현란한 프린트들이 가득 나왔다. 도둑놈들. 직접 손으로 그린 것도 아닌 프린트가 왜 3000달러란 말이냐.
평생 아트 따위 꿈도 못 꿀 것이 슬퍼진 나는 데이미언 허스트의 <신의 사랑을 위하여>(For the Love of God)의 고용량 이미지를 인터넷에서 찾았다. 18세기 유럽 남자의 두개골을 2156g의 백금으로 도금한 뒤 8601개의 다이아몬드를 박아넣은 이 작품의 가격은 무려 940억원이다. 허스트는 말했단다. “죽음의 상징인 두개골에 사치의 상징인 다이아몬드를 덮어 욕망 덩어리인 인간과 죽음의 상관관계를 조망하고 싶었다.” 그건 내 알 바 아니고 나는 그저 인류 역사상 가장 값비싼 아트를 마포 아파트 벽에 걸어두고 싶었다. 고해상 프린트에 2만원, 액자에 2만원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나의 첫번째 아트를 집에 들였다. 대량생산, 대량복제라는 팝아트의 철학에도 아름답게 부응하는 아트를.
글·사진 김도훈/<씨네21>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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