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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6.16 11:21 수정 : 2011.06.16 12:05

김도훈의 싱글 앤 더 시티
10대부터 묻어놓은 꿈은 히피처럼 떠나는 남미여행

고백하자면, 너도 한번 떠나보면 인생의 의미를 알게 될 거라며 싸이월드 스타일의 잠언을 써내려가는 여행기는 내 취향이 아니다. 나도 여행이라면 꽤 해봤다. 하지만 어디서도 나는 인생의 의미처럼 거창한 건 깨닫지 못했다. 내가 찾은 건 인생의 의미가 아니라 인생의 쾌락, 혹은 평생 이렇게 세상을 돌아다니며 살면 좋겠다는 역마살의 재발견이었다. 물론 공과금을 꼬박꼬박 납부하고 철마다 새로운 신발을 사고 고양이 사료값을 지불하느라 내 속의 역마살을 진정으로 발현할 기회는 오지 않았다. 올 거라고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런 꿈은 20대에나 꾸는 거라고 생각했다.

광고쟁이 손수진을 만난 건 블로그를 통해서였다. 고양이 두마리를 키우는 이 건강하고 강건한 독신녀는 사랑도 일도 끝내주게 해내는 모든 독신의 모범사례였다. 어느날 그녀는 직장에 사표를 내고 통장을 탈탈 털어 1년간 세계여행을 가겠다고 선언했다. 소식을 듣는 순간 비명을 빽빽 질러댔다. 그녀는 우리 모두가 그토록 실행에 옮기고 싶어하지만 저축해놓은 돈도 없고 돌아온 뒤 다시 직장 구할 일이 너무나 두려운 나머지 영원히 꿈만 꾸던 꿈을, 현실에서 실천하겠다고 선언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떠났다. 심지어 유럽과 북미는 모조리 제외하고 아시아, 중동, 아프리카와 남미를 여행 경로로 정하고 말이다. 여행지에서도 일주일에 한번은 뜨거운 욕조에 고급 입욕제를 넣고 몸을 담가야 직성이 풀리는 나로서는 도무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1년이 지났고 그녀는 돌아왔다. 그리고 책을 냈다. <서른 살의 일요일들>이라는 책이다. 첫장을 넘기자마자 나는 숨을 몰아쉬고 말았다. 처음 도착한 발리에서 그녀는 안심하고 마음을 내준 인도네시아의 가족들에게 잭나이프로 위협을 당하며 여행자금을 탈탈 털리고 말았던 것이다. 그녀는 쓰러지지 않았고, 여행은 세상의 오지를 돌고 돌아 남미에서 끝났다. 마지막 장을 넘기면서 나는 손톱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부러워서 넋이 나갈 것 같았다. 그녀의 여행은 30대 독신자가 꿈꿀 수 있는 최고의 지름이었다. 돈과 시간이 아니라 진정한 용기와 대범함이 필요한 지름 말이다.

광고쟁이 손수진은 얼마 전에 끝내주는 커피를 내릴 줄 아는 남자와 결혼했다. 그건 내가 최근에 본 어떤 결혼보다도 행복해 보였다. 결혼을 했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다. 독신의 궁극적인 지름을 이미 경험한 사람의 결혼이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여행과 결혼 직후, 나는 오래전 동생이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사진)에서 찍어온 사진을 인화해서 벽에 붙였다. 10대 시절부터 가슴 한편에 묻어놓은 남미 일주의 꿈을 다시 한번 꾸고 싶어서다. 직장을 때려치우고 히피처럼 대륙을 떠돌다 돌아오면 대체 어떻게 밥벌이를 해먹고 살 거냐고? 걱정 마시라. 할 줄 아는 게 글 쓰는 것밖에 없으니 남미를 갔다 오면 책을 하나 쓸 생각이다. 책 제목? <독신 최후의 지름>이다.

글·사진 <씨네21>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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