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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6.30 10:54 수정 : 2011.06.30 10:54

황선우

황선우의 싱글 앤 더 시티
베를린 아름드리 나무 곁에서 가슴은 쿵쾅댔다

베를린으로 이른 휴가를 다녀왔다. 무너진 장벽의 잔해나 브란덴부르크 문, 오케스트라 공연을 보겠다고 직항도 안 다니는 먼 도시에 일주일이나 머무른 건 아니다. 베를린은 지금 전세계 젊은 아티스트들의 새로운 수도다. 패션과 미술, 라이프스타일의 흥미로운 움직임들이 벌어지는 활력의 중심이다. 럭셔리한 리조트에 늘어져 ‘디톡스’ 하는 휴가는 반나절 만에 지루해하고, 바지런히 돌아다니며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노는지 들여다보기 좋아하는 내 여행 적성에 베를린은 꼭 맞았다.

베를린에 가서 뭘 하면 좋을지 사람들에게 물어봤더니 대답은 한결같았다. “클럽에 가야지! 세계 최고의 클럽을 가진 도시잖아!” 티브이(TV)타워(파리의 에펠탑이나 서울의 엔(N)서울타워처럼 동베를린의 상징적인 조형물)가 보이는 루프탑에서 클러빙을 즐길 수 있다는 ‘위크엔드’, 트는 음악이며 오는 사람들 물이 최고라는 ‘킹사이즈 바’가 치열한 경합을 벌였다. 최종결정된 목적지는 규모가 압도적이라는 ‘베르크하인’. 택시를 타고 주소를 찾아갔지만 고요한 거리에 사방은 어둠뿐이었다. 허허벌판을 한참 걸어 입구를 찾아갔더니 200m는 족히 되게 늘어선 사람들의 행렬 끝에 비로소 각 잡힌 회색 건물이 보였다. 20년 전 발전소를 리모델링했다는 빌딩 창으로 푸른 조명과 쿵쿵대는 음악이 새어 나왔다.

베를린의 클럽에서 음악을 즐기려는 여행자들과 베를리너들의 줄은 동틀 무렵까지 줄어들지 않는다. 사진은 ‘바 25’에 모인 클러버들.
동독 시절 관공서 같은 무뚝뚝한 외관 속에 신세계가 펼쳐졌다. 건조한 비트의 테크노가 심박을 빠르게 만들었다. 문신, 피어싱, 편하고도 멋지게 차려입은 클럽웨어, 간혹 웃통을 벗고 춤에 몰입한 청년들까지…. 클럽 안은 땀냄새와 에너지, 그리고 즐거움을 좇는 순수한 의지로 가득했다. 바에 앉아 독일 술 예거마이스터에 레드불을 섞은 칵테일 예거밤을 들이켜며 나도 즐겼다. 문제는, 사람들을 관찰하며 즐겼다는 거다. 시차의 피로 때문인지, 유일한 동양 여자라서 위축되었는지, 여행자의 긴장 때문에 나를 놓지 못한 건지 모르겠다. 하지만 거기서 나를 이방인으로 만든 게 피부색이나 나이의 문제가 아니었다는 건 분명하다. 토요일 밤의 열기 속에 녹아드는 데 실패했다는 걸 인정하고 새벽 5시께 그곳을 빠져나올 때, 동이 트는 거리에서 입장을 위해 선 줄은 더 길어져 있었다.

서울에서 마지막으로 클럽에 갔을 때는, 퇴근해서 넥타이만 풀어 주머니에 넣은 듯한 회사원들이 말을 걸어왔다. 그들이 즐기는 게 진짜 음악과 춤일까, ‘난 아직 클럽에도 다녀(그러니까 아직 젊어)’라는 자기만족일까 궁금했다. 진짜 쿨한 건, 젊고 잘 노는 애들의 클럽을 기웃대는 걸로 증명되지 않는다. 내 심박을 빠르게 만드는 즐거움이 뭔지 발견하고, 거기에 집중하는 순수한 의지를 간직하는 일이다. 세계 최고의 클럽에서 나는 미련 없이 은퇴를 선언했다. 대신 서점에서 사진집을 고르고 갤러리에서 젊은 아티스트의 이름을 메모하고 빈티지 숍에서 찻잔을 구경하고 수목원만큼이나 거대한 공원을 걸으니, 심장이 종종 ‘6090 안전지대’를 벗어났다. 영감과 자극을 충전했다. 클럽 밖 밝은 세상에도 느리고 잔잔한 카타르시스는 존재한다. 나이 먹었다고 놀림 받는다면, 그건 어쩔 수 없지만.

글 황선우 <더블유 코리아> 피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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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김도훈·황선우의 싱글 앤 더 시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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