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07.14 11:49
수정 : 2011.07.14 13:30
[esc]비실용적인 물건을 쓰다듬으니 샘솟는 그 희열
역시 이번에도 쓸모없는 것들을 샀다. 베를린에서 돌아오자마자 슈트케이스를 풀었더니 쓸모없는 것들이 잔뜩 튀어나왔다. 동구권 시절의 빈티지 찻잔 세트. 이건 그렇게까지 쓸모없다고는 할 수 없겠다. 나는 집에서 커피 내리는 걸 좋아하고, 마음에 드는 찻잔에 담아 마시는 건 더 좋아한다. 멀쩡한 커피 머그가 여섯개나 더 있다는 건 비밀이다. 다음은 미술관에서 산 대형 포스터. 이 쓸모없는 것을 가져오느라 1m가 넘는 종이상자를 따로 구입해야 했던 걸 떠올리니 갑자기 마음이 답답해진다만, 그래도 벽에 걸어놓으면 꽤 쓸모있어 보일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베를린 티브이(TV)타워가 그려진 보드카 술잔 세트. 한국에 도착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나는 심지어 술을 마시지도 않는다.

여행을 갔다 올 때마다 구입한 쓸모없는 것들은 이미 거실을 완전히 장악했다. 사슴 머리 모양의 촛대는 한국에서 맞는 양초를 찾을 수가 없어서 거실에 장식용으로 버려놨다. 도쿄 기치조지 뒷골목에서 구입한 태엽 감는 알파카 장난감은 정말정말 앙증맞고 예쁘긴 한데 너무 앙증맞고 예뻐서 이게 서른다섯살 남자의 거실에 어울리나 종종 고민을 하게 만든다. 최악의 쓸모없는 물건은 사진작가 테리 리처드슨 피규어(
사진)다. 내가 이 피규어의 가격을 말하는 순간 한겨레신문의 열렬한 구독자인 부모님은 “이런 쓸모없는 놈!”이라며 소리를 내지를 게 틀림없다. 하지만 파리의 컬렉트숍 콜레트의 점원이 이렇게 말하는 순간 이미 나는 크레디트카드를 꺼내들고 있었다. “이건 한정판이고 마지막으로 남은 거야. 시간이 지나면 이베이에서 10배는 더 높은 가격에 되팔 수 있을걸?”
어느 날 나는 외롭게 거실에 앉아서 모든 쓸모없는 것들의 가격을 쓸모있는 것들과 호기롭게 비교하기 시작했다.
‘도쿄에서 구입한 장식품들로는 근사한 소파를 구입할 수도 있었겠군. 베를린에서 구입한 사진집들로는 데스크톱을 장만할 수도 있었겠지. 파리에서 구입한 1920년대 아기 얼굴 마네킹으로는 저렴한 제습기 하나쯤은 살 수 있었을 테고. 테리 리처드슨 피규어? 몇달치 밥값은 충분했을 거야.’ 맙소사. 스마트폰 계산기를 두들기던 나는 어떤 현현의 순간을 맞이하고야 말았다. 나는 이 모든 쓸모없는 것들을 사 모으느라 몇달치 월급을 낭비해온 것이다.
반성과 후회는 잠깐이었다. 이내 나는 극세사 천으로 테리 리처드슨의 얼굴을 닦으며 왠지 모를 희열에 휩싸였다. 그건 쓸모없는 것들이 주는 어떤 정신적 고양 덕분이었다. 물론 우리에게는 쓸모있는 것들이 필요하다. 에어컨과 티브이와 냉장고와 식기세척기와 자동차가 필요하다. 하지만 쓸모있는 것들로만 둘러싸인 삶이란 얼마나 냉정하고 차가울 것인가. 삶이란 게 원래 수많은 쓸모없는 것들과 몇몇 쓸모있는 것들에 의해 굴러가는 아주 쓸모없기도 하고 쓸모있기도 한 것 아니던가?
글·사진 <씨네21>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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