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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9.08 15:54 수정 : 2011.09.08 15:54

매달 열리는 서교동 옥상마켓.

[매거진 esc] 황선우의 싱글 앤 더 시티

‘못 버리는 쇼퍼홀릭’, 서교동 옥상마켓에서 버리고 힘 솟다

독신녀에게 청소란 번뇌로 가는 지름길이다. 어째서 우리 집은 이렇게 좁은 걸까, 손바닥만한 집이 치워도 깨끗해지지 않는 건 왤까, 혼자 살면서 가사도우미 부르는 건 자취 윤리에 위배되는 일일까, 입지 않는 이 옷은 언제 샀으며 이 책은 언제 사서 아직 못 읽은 걸까…. 그때 문득 서가에 꽂힌 책 제목이 눈에 들어온다. <쇼퍼홀릭> <아무것도 못 버리는 사람>. 그 두 가지를 조합한 사람이 바로 나다. 번뇌의 사슬을 끊는 방법은 한 가지다. 수시로 버리고 비워내는 것. 쇼핑을 좋아하는 라이프스타일은 새로운 물건들을 끊임없이 집 안에 데려다 놓는다. 마이너스의 균형을 맞추지 않으면, 플러스의 속도에 집이 잠식당하고 마는 것이다.

 옥상마켓을 알게 된 건 친구의 초대를 받고서였다. 서교동 낡은 상가건물 2층의 낮은 옥상에서 한달에 한번 열리는 이 장터에는 누구나 신청해서 원하는 물건을 팔 수 있다. 입던 옷이나 빈티지 그릇 같은 것 외에도 홍대라는 지역 특성상 발랄한 머리와 엽렵한 손에서 탄생한 재미난 물건들, 그걸 만들어낸 재미난 사람들이 모인다. 손으로 만드는 실크스크린 프린트 백, 나무로 직접 만든 조명등, 작은 인쇄물이나 독립잡지까지. 가진 현금을 다 쓰고 또 살림살이를 늘리고야만 나는, 집이 물건들에게 압사당하기 전에 여기 셀러로 참여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모처럼 맑았던 일요일, 커다란 장바구니 세 개에 꾸려 온 짐을 돗자리 위에 펼쳐놓았다. 즉흥적으로 가격을 매긴다. 여름 내내 신던 샌들 3000원, 안 쓰는 립스틱 5000원. 자기한테 어울리는 물건을 골라 들고 조심스럽게 깎아달라는 사람에게는 고민하는 척하다가 에누리를 해줘도 즐겁다. 홍대의 카페형 병원인 제너럴닥터에서는 한켠에서 혈압을 재 주고, 누군가는 손수 만들어 온 딸기잼을 팔았다. 어스름이 내릴 즈음에는 인디 뮤지션들이 통기타를 들고 나와 노래를 들려줬다. 풍수지리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물건이 집 안에서 기운을 막고 에너지를 정체시킨다고들 하는데, 그날 옥상에서는 물건들이 흐르고 사람들이 만났다. 동네 잔치를 경험해본 적 없는 도시 청년들 세대가 자신들의 방식으로 작은 광장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황선우의 싱글 앤 더 시티
블로그에 사진을 올리고 온라인으로 벼룩시장을 열거나, 아름다운가게에 물건을 기부해본 적은 있다. 하지만 실제로 누군가와 대면하는 중고시장은 훨씬 즐거운 경험이었다. 내게서 죽어 있던 물건이 누군가를 만나 생명을 얻는 광경을 지켜보는 기분이랄까. “모인다는 건 왜 즐거울까 생각해 보니 힘이 나기 때문인 것 같다.” 마켓이 열린 카페 녹색광선의 사장님은 이런 글을 썼다. 원피스를 5000원에 사 간 친구는 그날 밤 메시지를 보내왔다. “옷에서 네 냄새 난다. 너랑 같이 있는 것 같아서 좋아.” 옥상마켓에서의 벌이는 소박했지만 사람들에게서 받아 온 에너지는 값으로 따질 수 없을 거다.

황선우/<더블유 코리아> 피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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