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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9.22 11:10 수정 : 2011.09.22 11:10

[esc] 김도훈의 싱글 앤더 더 시티

얼굴의 모공이 일순간에 비명을 질러댔다. 그러니까 이건 겨우 2주 전에 벌어진 일이다. 전복적인 연애 영화 한 편과 탈영 영화 한 편으로 충무로에서 독보적이고 독단적이고 독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영화감독이 로케이션 헌팅을 위해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로 왔다. 그가 찾고 있던 장소는 석양빛이 아름답게 들어오는 고층 아파트였다. 석양? 석양이라면 우리 집이 좀 쓸 만하지. 이 집 석양이 얼마나 끝내주냐면, 석양이 지는 거실에 앉아 아이폰으로 셀카를 찍는 게 나의 새로운 취미일 정도다.

나는 더할 나위 없이 흔쾌한 마음으로 촬영에 동의했다. 그런데 이 독보적이고 독단적이고 독한 감독은 촬영을 위해 집으로 들어서자마자 내 얼굴을 보고 이런 독한 발언을 쏟아내고야 말았다. “그런데 말이야. 기자님 왜 이렇게 얼굴이 갑자기 팍삭 늙었어?” 나는 정말이지 진지하게 고민했다. 독립영화계의 미래를 위해서 참을 것인가, 아니면 이 독보적으로 독단적이고 독한 감독을 당장 아파트 밖으로 집어던진 뒤 경찰에 자수할 것인가. 농담이 아니다. 나는 정말로 10분간 진지하게 후자를 고민했다. 내가 그를 아파트 밖으로 집어던지지 않은 이유는 순전히 그의 얼굴이 나보다 7년은 더 늙어 보였기 때문이라는 걸 꼭 밝히고 넘어갈 필요가 있을 것이다.

다음날 나는 백화점으로 달려갔다. 모두가 그토록 숭배하던 모 화장품 회사의 마스크팩을 사기 위해서였다. 매장으로 들어서자마자 점원이 나를 자리에 앉히더니 향이 좋은 차를 한잔 내왔다. 매장 점원이 이상할 정도로 평소보다 친절하게 구는 걸 보며 직감했다. 아마도, 매장으로 들어선 내 얼굴은 비둘기 똥을 처발라서라도 젊어질 수 있다면 그렇게 하겠노라는 다급한 의지로 이글이글 타올랐을 것이다. 부끄럽지만 어쩔 도리 없었다. 모든 자존심과 카드값의 부담을 떨치고 10개들이 마스크팩을 구입한 나는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한장당 2만원에 육박하는 축축한 종이짝을 얼굴에 붙이고 마음을 달랬다.

다음날 아침 나는 거울을 보며 처녀의 피를 들이마신 바토리 백작처럼 깔깔대며 웃었다. 모공은 조금 작아진 것 같았고 주름도 조금 줄어든 것 같았다. 반짝반짝 눈이 부셨다. 그러나 회사의 그 누구도 나의 ‘조금’ 작아진 모공과 ‘조금’ 줄어든 주름 따위 눈치채지 못했다. 그제서야 깨달았다. 진짜 문제는 콧등의 모공이 아니라 마음속 구멍의 크기였고, 미간의 주름이 아니라 마음속 자존감의 주름이었다. 누구도 알아보지 못하는 얼굴 가죽의 나이 따위를 근심하며 나는 젊음의 피를 마시려 발악을 했던 것이다. 왜 젊어지고 싶다는 욕망은 우리 모두를 이토록 나약한 소녀로 만드는가. 혹시 지금 우리 시대의 무의식을 잠식하는 가장 무시무시한 정신병은, 우울증이 아니라 피터팬신드롬인 걸까?

글·사진 <씨네21>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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