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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10.20 11:05 수정 : 2011.10.20 11:05

[esc] 김도훈의 싱글 앤 더 시티

해운대 마천루를 보며 터뜨린 불평, 알고 보면 질투

홍콩이군. 부산 광안대교를 건너면서 생각했다. 100층에 육박하는 빌딩들이 해운대와 수영만 어귀를 점령하고 있었다. 유명한 건축가 대니얼 리베스킨드와 스콧 사버가 설계를 맡았다는 빌딩들은 어딘지 모르게 실체가 느껴지지 않아서 꼭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들어 붙여놓은 것 같았다. 광안대교를 건너며 미친듯이 아이폰으로 사진을 찍고 있으니 택시기사가 말했다. “진짜 죽이지요. 저거 분양가가 억수로 높다 아입니까. 저거 다 서울 사람이랑 일본 사람들이 샀다 아입니까.”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해운대의 무시무시한 현대건축물들이 대부분 주거용으로 설계된 건물들이라는 것을. 유리 붕대로 꽁꽁 여며놓은 피사의 사탑은 사람이 살도록 만들어진 아파트였다.

나는 아파트에서 거의 평생을 살았다. 유년 시절 마산에서 살던 아파트는 항구 바로 옆에 있어서 아침에 일어나면 바닷바람이 솔솔 코로 들어왔다. 풀밭에서 메뚜기나 방아깨비를 잡을 정도로 공해가 없던 시절이었다. 엘리베이터도 없는 5층 아파트였지만 그 도시에서 거의 최초로 지어진 신식 아파트인 덕에 어린 마음에 어떤 프리미엄을 느꼈던 것도 같다. 학교 뒷산 동네 친구들의 집과 내 아파트를 마음속으로 몰래 비교해 보기도 하면서 말이다. 그러고는 부산의 15층짜리 아파트로 이사를 갔다. 소위 말하는 부산 8학군 중심가의 아파트였다. 단지 내에서 가장 넓은 80평짜리 동을 보면서는 종종 흠모의 마음을 품었다. 아파트가 좋아지고 넓어진다는 건 내가 고귀해진다는 의미인 것만 같았다. 아파트 높이와 평수로 인간의 가치를 따지는 그런 유아기적 인식은 나이가 들면서 없어지게 마련이다.

그런데 잠깐. 정말로 없어졌는가? 우리는 혹시 강남 아파트의 비인간적인 가격과 종종 터져나오는 그곳 주민들의 비뚤어진 선민의식을 욕하면서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남모를 흠모와 경외의 마음을 품고 사는 게 아닐까? 아파트값을 엉덩이 밑에 깔고 허덕이며 사는 바보들이라 욕하면서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타오르는 질투를 품지 않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인가? 나는 대니얼 리베스킨드의 해운대 주상복합 빌딩을 보며 사람들에게 불평을 늘어놓았다. “저런 곳에서 사람이 산다는 건 정말 말이 안 돼. 창문도 활짝 못 여는 70층짜리 집에서 어떻게 산다는 거야. 만약 불이라도 나면 해운대로 뛰어내릴 건가? 저런 유리 빌딩에서의 삶이란 건 애당초 지나치게 비인간적이야. 게다가 바다만 바라보고 살면 금세 우울증에 걸린다는 이야기도 있잖아?” 그러나 고백한다. 나는 끊임없이 불평을 늘어놓으면서도 70층짜리 거대한 유리성에 산다는 게 얼마나 근사한 일일지를 마음속으로 몰래 상상했다.

글·사진 김도훈 <씨네21>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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