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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1.12 15:07 수정 : 2012.01.12 15:07

서울 신촌 생맥주집 ‘서른 즈음에’의 테이블 풍경. 오기봉 제공

황선우의 싱글 앤 더 시티
왜 서른 살에 집착할까, 30대의 삶도 흔들리긴 마찬가지인데

비틀거리는 연말과 들뜬 카운트다운을 지나쳐 마침내 새해다. 형편없는 성적표를 받아 들고 실눈으로 확인하듯, 낯선 내 나이를 곁눈질하며 적응하느라 어리둥절한 시기이기도 하다. 사채 복리 이자도 아니고 언제 이렇게 숫자가 불어났을까 마음이 무겁지만 성적표처럼 고쳐 쓸 수도 없으니 뭐…. 착착 접어서 일단 저기 한구석에 치워버린다(그리고 슬슬 익숙해질 때쯤 거기서 하나가 더 늘어난 숫자를 받아 들겠지). 뮤지션 이석원은 <가장 보통의 존재>라는 책에서 자기소개를 ‘나이 탐험가’라고 적어놓기도 했는데,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삶은 참 공평하다. 누구나 처음 경험하는 미지의 나이 속을 온몸으로 관통해야 하니까. 달에 깃발이라도 꽂고 온 양 의기양양하게 반추하건 다들 다녀오는 시시한 수학여행으로 회상하건 간에, 겪어 보고 나야 거기에 대해 뭔가 할 말이 생긴다.

내 탐험만도 버거운데, 이맘때면 다른 이들의 엄살도 적잖이 들려온다. 매년 나이 호들갑과 숫자에 대한 의미 부여가 가장 심한 건 예외 없이 서른 살들이다. 충격과 공포부터 체념과 순응까지, 서른을 맞는 83년생 돼지띠들의 다양한 반응들은 대체로 귀엽다. 나도 언젠가 지나쳐 온 익숙한 모퉁이라서일까. 서른을 가장 좋아하는 건 출판 마케팅 관계자들인 것 같기도 하다. 인터넷 서점 검색창에 ‘서른’만 쳐 봐도 금세 알 수 있다. 죽을 수도 살 수도 없을 때 서른이 온다고, 어째야 할지 모르겠으니까 심리학에 물어보라고, 꿈에 미쳐라 공부에 미쳐라 사랑에 빠져라 돈을 모아라 여행을 떠나라…등등. 이리저리 부추기며 저마다 등을 떠민다. 재밌는 건 다들 등을 미는 쪽이 제각기 다른 방향이라는 점이지만.

황선우의 싱글 앤 더 시티
그런데 사람들은 왜 이렇게 서른에 집착할까? 슬슬 어린 날의 무모한 실험과 시행반복을 거쳐 자기가 살아갈 방식을 결정해야 할 때라는 의미의 단위라면, 현대의 서른은 재정의되어야 할 것 같다. 평균수명도 지겹도록 늘어났고, 부모에게서 경제적으로 독립하는 나이, 첫 취업과 첫 결혼의 나이 역시 많이 늦춰졌으니까. 이를테면 이런 표어를 혼자서라도 퍼뜨리고 싶어진다. ‘마흔은 새로운 서른이다!’ 삶의 버퍼링이 길어질 때, 20대라도 겁이 많으면 ‘리셋’ 버튼을 누르지 못하는 것처럼 30대도 ‘리부팅’ 할 수 있느냐 못하느냐는 나이보다는 마인드의 문제일 거다. 그리고 서른 살들에게 비밀을 한 가지 귀띔해 주자면, 사실 30대의 삶도 20대와 그리 다르지 않다. 어느 날 철이 드는 일은 벌어지지 않으며, 여전히 20대들처럼 놀고 싶어하고, 더 재밌게 놀 수 있다. 자기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뚜렷해지며, 좋아하는 것에 쓸 수 있는 돈도 좀 늘고, 같이 즐길 새로운 친구도 여전히 만나게 된다. 마흔 이후의 삶도 이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말해주는 선배들이 있다면, 앞으로의 나이 탐험도 그리 쓸쓸한 일만은 아닐 것 같다.

월간 <더블유 코리아> 피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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