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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11.11 09:54 수정 : 2010.11.25 15:16

최연승(18)군

[매거진 esc] 홍석우의 스트리트/스마트

패션편집매장 아르바이트생 최연승

최연승(18)군은 압구정동의 한 패션편집매장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이다. 체크무늬 울 재킷에 데님 셔츠와 올리브색 니트를 입고 오래 입어 길들인 듯한 회색 바지에 빈티지 운동화를 신은 모습은 번화가에서 마주칠 수 있는, 패션을 좋아하는 청년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는 이제 막 이십대를 앞둔, 아직은 앳된 모습이 남은 소년이다. 그의 친구들은 고등학교 3학년이고 올해 수능시험을 본다. 아마도 최연승은 수능 날에도 매장에서 일하고 있을 것이다. 친구들처럼 시험을 치르고 대학에 진학하는 대신, 몇 달 전 이미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학교 대신 이른 사회생활을 시작한 셈이다.

처음 편집매장에서 일하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평소 패션에 관심이 많아 손님으로 종종 들렀던 편집매장의 사장님에게 일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받았다. 별다른 고민 없이 단번에 수락하고는, 검정고시 공부하느라 쉰 4개월을 빼고 거의 1년간 일했다. 그는 기본적으로 손님을 응대하는 매장 직원이지만 그것 말고도 다양한 일을 한다. 매장의 홈페이지용 피팅모델도 하고, 설거지도 하고, 매장 뒤뜰의 잔디도 깎는다. 한 시즌 동안 몇 차례나 외국에서 들어오는 옷 상자를 나르고 구겨진 옷을 개는 것도 그의 몫이다.

나이키 운동화
그러면서도 좋아하는 디자이너의 옷을 가까이서 만날 수 있고, 마음껏 입어볼 수 있다. 매장 주인은 국내에서도 흔치 않은 소규모 패션편집매장을 일궈낸 사람인데다 매장의 특성과 트렌드를 잘 읽어내서 최연승에겐 ‘어떻게 패션 매장이 돌아가는지’를 알아가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된다.

그가 패션에 빠지게 된 특별한 계기는 없다. 다만 남들보다 조금 더 자신을 꾸미는 일에 열중했고, 빈티지 가게에서 헌옷을 사입기도 하고 몇 번인가 돈을 모아 디자이너 브랜드를 사기도 했다. 편집매장에서 일하면서부터 유행에 쉽게 휩쓸리는 옷보다 오래 입을 수 있는, 단정해 보이지만 단단한 만듦새를 가진 옷이 좋아졌다. 수년에서 10년 넘게 일관된 컬렉션을 선보이는 우드우드, 던더던 같은 북유럽 디자이너들 얘기를 할 때, 수줍은 미소를 띠고 조곤조곤 말하는 소년의 입이 조금 빨라졌다. 일하면서 매장에서 산 몇 개의 옷과, 압구정동의 단골 빈티지 가게에서 산 운동화를 빼면 최근에는 거의 옷을 사지 않았다. 친구들만큼 또래 문화에 휩쓸리지 않아서일까? 그의 취향은 다른 청소년들보단 약간 조숙한 면이 있다. 요즘 그의 관심사는 ‘탈것’이다. 서초동 집에서 압구정동 매장까지 매일 스쿠터로 출퇴근한다. 얼마 전 조립한 픽스트기어 자전거의 부품과 액세서리를 조금씩 모으는 것이 최근 생긴 사소한 취미 중 하나다.

홍석우의 스트리트/스마트
아직 십대 후반인 최연승은 자신이 남들과 다른 길을 걷는다는 자각이 있다. 그래서 가끔은 불안한 마음도 든다. 수시모집에 합격하고 대학생활을 코앞에 둔 친구들을 보면 ‘내가 택한 길이 맞는 걸까’ 생각하면서도 벌써 수년 후의 모습을 그려두었다. 그는 내년 초까지 매장에서 일한 다음 입대할 계획이다. 전역하면 벨기에 안트베르펜(앤트워프)으로 유학 갈 생각이다. “남자 구두를 배우고 싶어요. 아직 영어도 못하니까, 더 공부해야겠지만…. 앤트워프의 구두장인 밑에 들어가서 처음부터 차근차근 배워보고 싶어요.” 질리지 않게 잘 만든 워크웨어(작업복 스타일의 의상)를 좋아하는 소년의 입에서 세상에 열두 족밖에 없다는, 매장 한편의 구두 얘기가 나왔다. 그의 눈은 보석처럼 빛났다.

그는 어떤 것을 걸쳤나? 재킷·셔츠-던더던, 니트-우드우드, 바지-라프시몬스, 신발-나이키, 모자-놀스 프로젝트

글·사진 홍석우 패션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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