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0.11.25 09:42
수정 : 2010.11.25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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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우의 스트리트/스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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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홍석우의 스트리트/스마트
10~20대 모델인생 거쳐 물 흐르듯 사는 심재경
심재경(32)을 길에서 마주친다면, 나는 20대라고 짐작할 것이다. 오버사이즈의 라이더 재킷과 스트리트 브랜드의 야구 모자가 30대의 전유물은 아니니까 말이다. 그의 옷 취향은 ‘유니섹스’에 가깝다. 오늘처럼 원피스를 입은 날은 사실 드문 편이고, 남자 사이즈의 청바지에 헐렁한 티셔츠를 입고 자전거 타길 즐긴다. 심재경은 32살이지만 비슷한 또래와는 조금 다른 생김새를 가졌다. 대한민국 여성 평균신장보다 큰 키와 가느다란 팔다리, 허리춤쯤 오는 가느다란 머리칼과 말할 때 생기는 작은 보조개 같은 것이 그를 어딘가 소녀처럼 보이게 한다. 고음에 속하는 목소리와 30대라면 으레 입어야 할 것 같은 옷차림과 상관없어 보이는 스타일은 길에서 그를 다른 이들과 구별하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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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티.유.케이(T.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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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재수생이던 19살 때, 지인의 아는 사진가를 통해 모델 제안을 받았다. 첫 작업은 <인서울 매거진>이라는, 지금은 사라진 전설적인 무료잡지였다. “서울의 어느 고궁에서 한 야외 촬영이었어요. 사진가 오빠나 스태프들과 코드가 맞은데다 호기심이 있었으니까요. 결과에 상관없이 재미를 느꼈어요.” 사실 상업적인 모델 일을 할 마음은 없었다. 하지만 그 작업을 계기로 더 많은 일이 들어왔고, 결과적으로 남들보다 빨리 패션계에 발을 들인 셈이 됐다.
소위 ‘라이선스 패션잡지’들이 생긴 1990년대 중반, 새로운 문화에 대한 꿈틀거림은 많은 작업으로 이어졌다. 가까운 일본 도쿄부터 프랑스의 어느 시골 마을까지, 직업 덕에 세계 이곳저곳을 다녔다. 인터넷이 활발하지 않던 시절 젊은 여성들은 패션잡지가 전해주는 정보와 모델에 열광했다. 배두나와 공효진 같은 지금의 톱 배우가 모델로 첫 경력을 쌓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모델은 태생적인 한계가 있다. ‘나이’의 제약이다. 패션은 본능적으로 더 어린 모델을 원하고, 톱 모델들은 점점 역사라는 이름으로 사라지거나 다른 직업을 구했다. 그도 자연스럽게 다른 관심사로 눈을 돌렸다. 음악방송의 브이제이(VJ)를 하고 두장의 앨범을 냈다. 그는 수많은 모델 중에서도 꽤 다양한 작업을 해온, 어찌 보면 운이 좋은 사람이었지만 불같은 열정은 없었다. 그저 물 흐르는 대로 가는 것이 좋았다. 천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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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경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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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30대를 사는 심재경은 모델을 시작한 20대 시절을 기억할까. “처음은 호기심에 시작하게 된 일이었으니까, 20대에는 그저 열심히 일했어요. 서른을 넘어서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해온 작업이 모여서 좋은 방향으로 작용하는 것 같아요.” 10대의 그는 막 다른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철부지 소녀였고, 20대에는 스스로 해보고 싶은 것들을 많이 해본 운이 좋은 사람이었다. 지금의 그는 치열한 삶의 연장이 아닌 휴식과 재충전을 택했다. 디자이너 브랜드의 일원으로 서울 패션위크의 컬렉션을 치러낸 후 손에 쥐고 있던 것들을 슬며시 놓아버렸다. 일에 대한 열망, 혹은 성공이라는 가치보다 중요한 가족이나 하고 싶은 일들을 요즘 생각한다. 그가 28살일 때의 사진을 봤다. 까맣게 태운 피부를 빼면 20대의 그는 지금과 많이 다르지 않았다. 다만 어릴 때와 달라진 생각들이 지금의 그를 채우고 있을 것이다.
그는 어떤 것을 걸쳤을까? 라이더 재킷-트로피컬 사운드, 원피스-푸시버튼, 신발-티.유.케이(T.U.K), 모자-미시카
홍석우 글·사진 패션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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