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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12.09 10:30 수정 : 2010.12.09 10:30

도쿄 클럽판의 디제이 ‘마드모아젤 유리아’

[매거진 esc] 홍석우의 스트리트/스마트

도쿄 클럽판의 디제이 ‘마드모아젤 유리아’

그를 처음 안 것은 2008년 여름이었다. 당시 패션 편집매장에서 함께 일하던 동료가 일본 도쿄에서 디제이(DJ)를 한다는 친구 얘길 해줬다. 스피커를 통해 나오는 믹스테이프 속 음악이 사무실 안에 울려 퍼졌다. 보통의 일본인에게, 아니 보통의 지구인에게선 나올 수 없는 에메랄드빛 머리카락색이었다. ‘마드모아젤 유리아’라는 이름의 소녀(23)는 기세등등한 자신감을 품은 눈으로, 화면 밖의 나와 마주하고 있었다.

16살의 유리아는 작은 밴드의 기타리스트이자 보컬인 고등학생이었다. 하루는 신주쿠에서 열린 친구의 파티에 놀러 갔다가 ‘디제이를 해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그는 어릴 때부터 패션과 음악에 관심이 많았다. 클래식과 팝 음악부터 뉴레이브와 일렉트로닉까지 다양한 장르를 들었다. 헌 옷을 사다 고쳐 입고 유럽의 전위적인 디자이너들을 좋아하고 ‘코스튬 주얼리’(값비싸 보이는 모조 장신구)에 열광했다. “클럽에서 음악을 틀거나 밖에 나갈 때, 제가 원하는 것을 입고 또 보여주길 바라요. 옷으로 자신을 보여주는 거죠. 고등학생 때부터 이어진 자연스러운 행동이에요.”

데뷔 무대에 서기까지 1년이 넘는 혹독한 연습을 거쳤다. 첫 무대 이후 사람들은 대번 그의 음악과 패션을 알아봤다. 마드모아젤 유리아 하면 떠오르는 알록달록한 패션은 그만의 특징이 됐다. 파란 단발머리의 숙녀는 어깨가 솟은, 군데군데 가짜 보석이 박힌 재킷을 입고, 때로는 신나고 때로는 도도한 음악을 틀었다. 그는 어느새 디제이를 넘어 도쿄 클럽판의 ‘스타일 아이콘’이 됐다. 대형 음반사인 이엠아이(EMI)의 관계자는 그녀에게 믹스테이프를 낼 것을 제안했다. 2008년 8월 첫 믹스테이프 ‘네온 스프레드’는 그렇게 모습을 드러냈다. 그 후 3년간 쉼 없이 이어진 활동에 친구들도 금세 늘었다. 재일동포 뮤지션 버발과 윤은 그의 음악적 동지이자 절친한 선배이다. 2010년의 서머소닉 페스티벌에선 세계적인 뮤지션 우피와 함께 노래했다.

도쿄 클럽판의 디제이 ‘마드모아젤 유리아’

하루하루를 다람쥐 쳇바퀴처럼 사는 사람들에게 그의 얘기는 ‘이상향’ 혹은 ‘다가설 수 없는 무언가’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한다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알아요. 그건 일본 젊은이들도 마찬가지거든요.” 그가 말을 잇는다. “저는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하기 위해 노력했어요. 식상한 말일 수도 있지만 두려워하지 않고 실행에 옮기는 것이 가장 중요하죠.” 음악과 패션을 아우르는 그의 작업이 시대의 호응을 얻은 것은 비단 젊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유리아는 자신이 남들과 조금 다른 존재가 되어 간다는 것, 이를테면 ‘스타일 아이콘’으로 인식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녀를 지배하는 것은 사업가의 전략적인 면모가 아닌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한다’는 확고한 기준뿐이다.

그와 함께한 반나절의 서울 산책 뒤엔 특별한 아우라를 가진 사람이라기보단, 또래 소녀의 느낌이 점점 짙어져서 무언가 안심이 됐다. 길거리 좌판에서 발견한 귀여운 액세서리에 열광하고 헌 옷을 파는 빈티지 시장에서 5000원을 더 깎고 좋아하는 모습이 그랬다. 굳이 다른 점을 꼽자면, ‘로커빌리’(로큰롤과 컨트리 음악을 혼합한 형태의 미국 음악) 음악을 듣고 일부러 산 모조품에 화려한 장식을 달곤 패러디를 즐기는 모습 정도일까. 진한 눈화장을 한 빨간 입술의 소녀는 알 듯 모를 듯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어떤 것을 걸쳤나? 재킷·스웨트셔츠(맨투맨티)-케이티지 / 가방-루이뷔통

글·사진 홍석우 패션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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