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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3.31 11:19 수정 : 2011.03.31 11:19

송주호씨

[매거진 esc] 홍석우의 스트리트/스마트
바지 잘 입는 남자, 예비 패션디자이너 송주호

송주호(30·사진)의 페이스북 프로필에는 손 사진이 걸려 있다. 피카소가 현대판 레오나르도 다빈치라며 극찬했다는 이탈리아의 디자인 거장 브루노 무나리의 작품이다. 무나리는 얘기할 때 유독 손동작이 다양한 이탈리아인을 ‘이탈리아 사전의 추가설명’(Supplemento al dizionario italiano)이라는 말로 재치있게 표현했다. 프로필 사진에 얼굴 대신 ‘이탈리아’의 ‘손’을 박아 넣을 만큼, 그를 말할 때 이 두 가지를 빼놓을 수는 없다. 다른 ‘패션 키즈’들처럼 그도 또래 친구들과 함께 패션을 좋아했다. 댄서, 자전거 매장 오너, 사진가의 길을 택한 친구들과 달리 그는 남성복 디자이너가 되겠다는 생각만으로 지금껏 살았다. 단조로워 보이지만 실은 깊은 남성복의 ‘심장’을 체험하기 위해, 서울에서 패션학교를 졸업한 뒤 곧 이탈리아 피렌체로 갔다. 송주호는 피렌체의 패션학교 폴리모다(Polimoda)의 졸업을 앞둔 서른 살의 예비 패션디자이너이다.

사실 큰 키에 전형적인 남자 마스크를 가진 그를 보면 무얼 하는 사람인지 쉽게 파악하기 어렵다. 하지만 기다란 팔 끝의 매끄러운 손가락을 보면,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의 손이란 것을 대번에 알 수 있다. 수많은 디자인과 패턴을 그리고, 재봉틀을 벗삼아 밤을 지새우고, 원단시장을 제집 드나들듯 한 사람의 손이다. 서울의 유명 패션학교인 에스모드 서울에서 그의 졸업전시를 봤을 때에도, 수십명이 만든 졸업작품 속에서 기억에 남은 것은 그의 옷뿐이었다. 남성복의 기본인 재킷과 셔츠로 만든 작업은 대학 졸업반이라기엔 별로 서툴지 않았다. 패션을 공부한 학생들 특유의 기교도 적었다. 훗날 사석에서 그의 여자친구와 먼저 안면을 트고 나서, 그를 알게 되었을 땐 내가 봤던 졸업전시의 주인공이란 사실에 묘한 인연을 느꼈다.

송주호씨
시류에 편승하지 않으면서도 잘 만든 옷을 좋아하는 그의 취향처럼, 첫 만남부터 지금까지 내가 기억하는 그의 옷차림엔 일관성이 있었고 그 중심에 ‘바지’가 있다. 여름에 알파벳 하나 들어가지 않은 흰색 티셔츠만 입을 때에도, 송곳니처럼 날카로운 바람이 매섭게 부는 겨울에도, 그는 소재만 달랐지 항상 비슷한 바지를 입고 있었다. 항상 말쑥한 차림의 그가 입은 바지는 내게 연구 대상이었다. 몇 번인가 만난 뒤, 결국 한번은 물어봤다. 바지, 어디서 샀느냐고. 그는 대수롭지 않다는 말투로 맞춰 입는다고 했다. 직접 원단을 떼어다가 치수를 잰 바지 도안을 컬렉션 작업 할 때의 단골 샘플실에 맡기면 세상에 하나뿐인 바지가 나온다. 그 바지는 옷차림의 시작이자 디자이너로서 도달하려는 이정표처럼 보인다. 시간이 지나도 입을 수 있는 옷에 현대적인 감각을 녹이고, 시간을 자기 것으로 만들고, 그것을 옷이란 매개체로 보여주려 하는 것. 피렌체로 무작정 유학을 결심한 것도, 그 후에 월반을 하고 우러러보는 디자이너들에게 사사한 것도, 송주호는 별거 아닌 얘기처럼 내뱉는다. “유행에 별로 관심이 없다”는 말처럼.

패션에는 으레 편견이 있다. 현대문화의 한 축을 차지하고 있으면서도 소비로 시작해 소비로 끝나는, 생명력이 짧은 유행에 불과하다는 인식이 알게 모르게 저변에 깔려 있다. 거기다 유학생활까지 한다면, 하나의 문화라기보단 돈 쓰는 방식 중 하나로 보기 십상이다. 30대의 그는 예전처럼 치열하게 의견을 털어놓진 않는다. 대신 하나씩 잘 만든 옷을 만드는 것처럼, 주어진 시간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옷을 지으려 한다. 피렌체에 정착한 몇 안 되는 패션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고민과 불면에 뒤척이던 새벽 날들이 헛되지 않기 위해, 그의 시간은 흐른다.

글·사진 홍석우 패션칼럼니스트

그는 어떤 것을 걸쳤나? 울재킷-이브생로랑 / 재킷-바버 / 신발-메종 마르탱 마르지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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