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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4.07 14:39 수정 : 2011.04.07 14:39

김태원. 문화방송 제공.

[매거진 esc] 심정희의 스타일 액츄얼리

패션에디터의 슬픈 숙명 중 하나는 티브이 프로그램이든 영화든 출연자의 옷차림이 눈에 거슬리기 시작하면 프로그램에 몰입이 안 된다는 것. 최근에 나를 슬픈 숙명 앞에 또 한번 무릎 꿇게 한 프로그램은 <무릎팍 도사>였다. 김태원이 무릎팍 도사네 방문을 활짝 열어젖힌 순간부터 나의 우뇌는 끊임없이 내 좌뇌에 불만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선글라스가 저게 뭐야? 저런 디자인 요즘은 아무도 안 쓰는데! 아휴, 게다가 다리는 또 흰색이네. 아이고, 요란해.’ ‘요란’이라는 단어가 떠오른 데 이어 눈길은 자연스럽게 김태원이 입은 재킷에 가 닿았다. ‘으악, 아저씨가 웬 호피 무늬? 게다가 소재는 또 후들거려. 어라? 그러고 보니 저 재킷은 호피 무늬라기보다는 물고기의 표면에 더 가깝군. 표면이 저렇게 생긴 게 우럭이었던가? 광어? 참, 메기도 있었지.’

이쯤 되면 별의별 생각이 다 떠오른다. 리모컨의 ‘일시정지’ 버튼을 누르고 내가 티브이 속으로 들어가는 상상. 아무렇지 않게 새로 투입된 피디 중 한 사람인 척하며 “잠깐만요!”를 외치고 세트 속으로 들어가는 상상. 그런 다음 김태원의 옷을 싹 갈아입히는 상상. 솔직히, 가장 바꾸고 싶은 건 모자와 헤어스타일이지만(모자는 벗기고 싶고, 시간이 허락된다면 머리는 웨이브를 넣어 부풀리고 싶다. 너무 마른 사람이 긴 생머리를 하고 있으면 더더욱 가냘파 보이니까) 그건 반발이 너무 심할 것 같아 상상 속에서조차 포기.(모자를 벗기려는 순간, 김태원 아저씨가 내 머리채를 휙 낚아챌지도 몰라, 흑)

그런데 내 머리채를 휙 낚아챈 건 김태원이 아니라 <라디오스타>에 나온 박완규였다. 김태원과 비슷하게 선글라스에 모자를 쓴 박완규가 김경호 이야기를 할 때, 머리채를 낚아채인 것보다 더한 충격이 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김경호가) 핑클 춤을 추는 것도 좋다 쳐요. 머리를 잘랐어요. 그것도 한참 유행하던 <옥탑방 고양이> 김래원 스타일로!” 그 말 뒤에는 이런 말이 생략되어 있었다. “그게 할 짓입니까? 록을 한다는 사람이?”


심정희의 스타일 액츄얼리
세상에는 ‘옷을 잘 입기 위해’ 옷을 입는 게 아니라 ‘자기가 원하는 것’을 위해 옷을 입는 사람들도 있다. 숭배해 마지않는 ‘록 스피릿’을 위해 유행과도 무관하고 얼굴형과도 무관한 선글라스를 끼고, ‘도대체 저건 왜 썼을까’ 싶은 모자를 쓰고 등장한 김태원과 박완규처럼. 거기에 생각이 미치자 상상 속에서나마 ‘일시정지’ 버튼을 누르고 녹화에 끼어든 나 자신이 좀 부끄러워졌다. “옷은 머리가 아니라 마음으로 입는 거야. 마음 중에서도 깊숙한 곳, 심금!” 하는 김태원의 목소리가 귓가를 스쳐가는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만 그들에게 ‘록 스피릿’이 있다면 내겐 ‘멋 스피릿’이 있다. 감상에서 깨어나 다시 ‘일시정지’ 버튼을 누른다. 세트로 뛰어들며 외친다. “자자, 몸에 맞는 옷을 입는 건 록 스피릿에 어긋나는 거 아니죠? 코디네이터 실장님, 한 사이즈 작은 재킷 가져오신 거 혹시 없나요? 있으면 갈아입고 갑시다!”

심정희 <에스콰이어> 패션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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