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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돌프 아이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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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버시의 종말
노트르담대학 얼굴인식 소프트웨어 논문발표
데이터베이스 분석해 개인의 고유특징 식별
성형 전후 사진 인식성공률 78%로 높아
#1. 사진 찍을 때 ‘김치~’하며 미소를 짓는 게 여권사진에선 허용되지 않는다. 눈썹이나 귀의 일부가 안경이나 머리칼에 의해 가려서도 안된다. 머리카락에 귀가 덮이는 머리모양이 흔하지만 여권사진에선 귀가 고스란히 노출되어야 하는 등 유난히 조건이 까다롭다. 왜일까?궁금증은 지난주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가 50년 만에 밝힌 ‘아돌프 아이히만 체포작전’에서 풀렸다. 아이히만은 2차대전중 나치 독일의 600만 유대인 학살을 지휘한 책임자였지만, 패전과 함께 종적을 감췄다. 아르헨티나로 도피해 ‘리카르도 클레멘트’로 이름을 바꾸는 등 다른 신분으로 숨어 살던 그는 1960년 체포돼 이스라엘로 비밀리에 압송된 뒤 세상을 놀라게 한 재판을 거쳐 이듬해 사형에 처해졌다. 모사드 역사상 최대의 규모로 알려진 대표적인 비밀작전이었지만 자세한 내용은 이번에 비로소 알려졌다. 모사드가 은신한 아이히만을 15년 만에 찾아내는 데 결정적 단서로 삼은 것은 그의 귀였다. 모사드가 몰래 찍어온 사진을 보고 이스라엘 법의학자들은 클레멘트가 아이히만임을 확인했다. 귀의 세부 모양을 비교한 결과였다.
일상생활에서 상대의 귀 모습으로 누군가를 식별하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정보기관에선 주요한 신원 식별도구로 써왔다는 사실이 모사드의 학살자 체포 비밀작전에서 확인됐다. 귀는 사람마다 고유한 모습을 갖고 있는데다 성형하는 경우도 드물기 때문에 성형수술이 많아진 시대에 얼굴 인식을 통한 자동식별에서 더욱 중요해진 신체기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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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줄은 성형전 사진이고, 아래쪽은 성형 수술 이후의 사진이다. 기존의 얼굴인식 소프트웨어는 이처럼 달라진 얼굴에 대한 인식률이 50% 수준에 불과해, 수사 기관 등은 성형수술이 대중화한 데 따라 새로운 얼굴인식 기술을 요구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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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통상부는 올해 하반기부터 여권을 발급받을 때 발급대행 기관에서 여권용 사진을 직접 찍어주는 ‘전자여권 얼굴사진 실시간 취득시스템’을 시범 도입하고, 내년에 적용을 전면 확대할 계획이라고 지난달 밝혔다. 외교부는 “규격에 맞지 않는 사진 등으로 인한 재촬영 불편이 사라질 것”이라는 이유를 밝혔지만, 배경에는 그동안 신청인이 제출해온 사진의 지나친 ‘포토숍 효과’로 인한 신원 식별 어려움이 있다.
여권 사진 등은 발급기관이 직접 촬영하는 방법을 쓰면 ‘포토숍 효과’를 피해 개인을 식별할 수 있지만, 아예 얼굴이 달라져버리면 문제가 간단하지 않다. 최근 연예인들 중에는 턱뼈를 깎아내는 양악 수술 등을 받은 뒤 얼굴의 윤곽이 확 바뀐 다른 사람처럼 여겨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수술 이전의 사진을 촬영한 신분증으로는 본인 여부를 입증하기 어려울 수 있다.
범죄와 연결된 성형수술은 심각한 문제가 된다. <양들의 침묵> <페이스오프> 등 영화 속 상상물이던 성형수술을 통한 범죄는 성형수술의 대중화와 더불어 현실 속 사례가 됐다. 외국에서의 사례만이 아니라, 국내에서도 지난 2010년 연쇄 성폭행을 저지른 범인이 방송사의 범죄자 공개수배 프로그램을 통해 사진이 공개되며 지명수배되자 성형수술을 하고 3년 넘는 은신 도피생활을 하다가 검거된 일도 화제가 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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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노트르담대학 컴퓨터공학과 케빈 보이어 교수진이 최근 한 학회에서 발표한 논문에서는 성형 수술 전후에 달라진 얼굴 사진을 식별하는 새로운 기술을 소개했다. 성형 수술을 받기전(왼쪽)의 얼굴을 수술 이후(오른쪽) 사진과 비교할 때, 얼굴의 윤곽만이 아니라 얼굴 각 요소의 다양한 부분들을 비교해 변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는 특성을 찾아내는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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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 기술이 더 많은 사람의 더 많은 사진을 기록한 데이터베이스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성형 수술의 대중화는 얼굴인식 기능의 고도화와 더 방대한 얼굴 사진 데이터베이스의 필요성으로 이어지고 있다.
구본권 기자 starry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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