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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2.17 11:13 수정 : 2011.04.28 11:15

난 온몸으로 불맛을 배웠다. 일러스트레이션 김윤재

[매거진 esc] 누들로드 이욱정 PD의 ‘르 코르동 블뢰’ 생존기
③ 전투 같은 실습시간, 벌겋게 덴 손아귀

실습시간이 시작되면 모두들 전투 모드로 돌변한다. 평소에는 장난치고 농담하던 반 친구들도 실습이 시작되면 신경이 날카로운 칼처럼 곤두선다. 군대에서 사격장 군기가 제일 무섭듯, 다른 수업시간에는 상냥하던 셰프들(요리학교에서는 교수님을 그냥 셰프라고 부른다)도 일단 주방에 들어오면 얼굴에 미소가 사라진다. 특히 초급반에서는 학생들의 작은 실수에도 불호령이 떨어진다. 레스토랑의 키친에서는 한시라도 정신 놓고 있다가는 크게 다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습실(또는 레스토랑) 키친 구조는 가정집과는 다르다. 어머니의 똑똑 채소 써는 소리와 구수한 음식 냄새가 흘러나오는 포근한 공간이 가정집 부엌이라면, 프로들의 주방은 그 모양새부터 위압적이다. 우선 눈에 보이는 모든 쇳덩이들이 겁나게 뜨겁다는 것이다. 가장 무시무시한 것은 플랫 톱(Flat Top) 오븐이다. 큰 테이블만한 철판이 통째로 불덩이처럼 달구어져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한꺼번에 수십개의 소스팬과 프라이팬들을 올려놓고 5분 안에 데울 수 있는 괴물이다. 깜빡 정신 놓고 있다가 플랫 톱 위에 손이라도 얹게 되면 순식간에 살갗이 달라붙는다. 나는 처음 ‘르 코르동 블뢰’ 실습주방에서 플랫 톱을 보았을 때 고대 중국에서 대역 죄인에게 사용했다는 고문 기구를 떠올렸다. 무협지에 등장하는 장작불로 시뻘겋게 달군 뒤 죄인을 맨발로 걷게 했던 엽기적인 장치 말이다.

초급반 실습 3주차 즈음 ‘로스트비프’를 요리하던 날, 나는 뜨거운 불맛을 제대로 맛보게 된다. 나를 잡아먹은 괴물은 천만다행 플랫 톱이 아니었다.(만약 그랬다면 난 지금 이 글의 자판을 입으로 누르고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냄비였다. 가정용과 달리 프로들이 쓰는 주방용 팬들은 손잡이가 플라스틱이나 나무가 아니라 전부 금속 재질이다. 고기나 생선을 직화로 조리한 다음 냄비나 프라이팬에 담고 그대로 오븐에 넣어 속까지 익히는 프랑스 요리의 기본적인 테크닉 때문이다.

이욱정 피디(오른쪽에서 셋째)와 르 코르동 블뢰 친구들.

군 사격장처럼 군기 센 요리학교 주방

아무튼 그날 실습의 시작은 나름 순조로웠다. 먼저, 설로인 스테이크(Sirloin Steak)를 만들기 위해 재료가 되는 쇠고기 등심의 연한 부위를 지방과 자투리 살코기를 잘라내고 실로 동여맨 다음 뜨거운 팬에 표면을 익혔다. 그리고 잘라낸 부위는 미르푸아(mirepoix·보통 소스 만들기 위해 쓰이는 토막 썬 양파, 당근, 셀러리의 모음)와 마늘, 통후추와 육수를 넣고 소스를 만들었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재앙의 순간은 스테이크를 프라이팬째로 뜨거운 오븐 안에 집어넣어 추가로 익혔다가 꺼냈을 때 벌어졌다. 꺼낼 때야 당연히 뜨거운 줄 알고 손잡이를 키친타월로 조심스럽게 잡았지만, 1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 정신없는 주방에서 잠시 몸을 돌려 다른 작업을 하는 사이 이것을 까맣게 잊어버렸다. 그러고는 집에서 하던 버릇대로 아직 대장간의 쇠뭉치처럼 달구어져 있는 금속 손잡이를 맨손으로 덥석 잡아버리고 말았다. 그 당시에는 이런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 뜨거운 손잡이에는 항상 키친타월을 감아놔야 한다는 수칙을 모르고 있었다.

‘으악~’ 비명을 지를 사이도 없이 손아귀는 미디엄 레어(medium rare) 상태로 익어버렸다. 눈물이 찔끔 나올 만큼 아팠지만 얼음물에 잠깐 담가두었다가 응급조처만 한 다음 다시 조리를 시작했다.(이 정도 화상은 그 누구도 “괜찮냐?”고 건성으로도 묻지 않는다.) 전열을 복구하고 마지막 피치를 올려야 하는데 온 신경이 손바닥의 통증으로 쏠렸다. 물집이 생겨 손아귀가 벌겋게 부어오르고 사정없이 따끔거렸다. 데드라인은 1분, 1초 다가오는데 소스는 졸아들어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고 스테이크와 곁들이는 폼샤토(Pommes Chateau·감자요리)는 탄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이런 타이밍에 제일 내 속을 뒤집어 놓는 것이 있다. 먼저 요리를 끝내고 “셰프, 지금 검사 맡아도 되나요”라고 주방이 다 들리도록 큰소리로 잘난 체하는 녀석들이다. 하필 그날 실습 셰프는 깐깐하기로 소문난 얀 선생님이었다. 샤를 드골을 떠올리게 하는 오뚝한 매부리코에 신비로운 느낌의 푸른 눈매하며 여권을 보지 않아도 얼굴에 “나는 오만한 프랑스인이오”라고 쓰여 있다.


쓰라린 손바닥에 “방송사 떠나 웬 고생…”

드디어, 시간 종료. 셰프 얀이 단호한 목소리로 외쳤다. “자, 이제 모두, 그만. 완성된 접시를 차례로 가지고 오세요.” 완성된 로스트비프를 접시에 막 담으려는데 아차, 이런, 접시를 따뜻하게 데워놓는 것을 잊었네, 에라 모르겠다, 비상수단으로 뜨거운 오븐 안에 차가운 빈 접시를 집어넣었다가 1분 있다 꺼냈다. 이번에는 접시가 비빔밥용 돌솥처럼 불덩이로 변했다. 냉장고에 다시 넣을 시간도 없고 허겁지겁 스테이크 위에 소스를 얹고 가니시(고명)를 곁들여 셰프에게 가져갔다. 접시부터 만져본 셰프의 눈초리가 확 올라간다. “네 접시가 활활 타고 있어!”(Your plate is burning hot!) 이럴 때는 딱히 변명의 여지가 없으니 실없이 웃는 수밖에 없다. “고기는 그런대로 잘 구웠네. 그런데 소스가 다 어디로 갔지?” 앵, 접시를 내려다보니 좀 전까지만 해도 고기 주위를 둘러싸고 있던 소스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다. 뜨거운 접시의 열기 때문에 다 말라버렸던 것이었다. 마지막까지 불이 말썽이었다. 요리유학 오기 전 촬영하다 만난 한 셰프가 이런 말을 해주신 것이 기억났다. 불맛을 알아야 맛있는 요리가 나온다! 어쨌든, 그날 나는 온몸으로 ‘불맛’을 배웠다.

저녁 7시가 다 되어 땀범벅이 된 채 집으로 가는 교외선 기차에 올랐다. 화상 입은 손바닥이 심하게 쓰려왔다. 잘 다니던 방송사 떠나 왜 이런 고생을 사서 하고 있지, 괜히 우울해져 멍하니 차창 너머로 해 저무는 템스강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무릎 위 배낭 안에는 오늘 내 손으로 만든 로스트비프가 들어 있었다. 아직 채 식지 않은 음식의 온기가 느껴졌고 마음이 조금 편안하고 뿌듯해졌다. 막 조명이 켜진 런던아이(London Eye)의 원형 궤도가 밤하늘의 거대한 접시가 되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글 이욱정 KBS 피디(www.kbs.co.kr/cook)

사진 제공 이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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