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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국적 식객부대, 한식의 처녀림 탐험하다. 일러스트레이션 김윤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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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누들로드 이욱정 PD의 ‘르 코르동 블뢰’ 생존기
⑦ 다국적 식객부대, 한식의 처녀림 탐험하다
‘르 코르동 블뢰’는 세계 11개국에 14개 캠퍼스가 있다. 그중에서 런던 캠퍼스는 가장 다양한 나라의 학생들이 모인 학교다. 요리과정은 한 기수가 50명 정도 되는데 국적을 따져보면 15개 나라가 넘는다. 아무래도 영국이다 보니 유럽 학생들이 절반쯤 되고, 아메리카와 아시아 학생들이 나머지를 차지한다. 확실히 나라별로 개성들이 강하다. 예를 들어 남미나 포르투갈, 스페인 같은 라틴 문화권에서 온 친구들은 떠들썩하고 화끈하다. 요리하는 스타일도 거침없고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수업 시간에 옆자리에 앉게 되면 좀 시끄럽다는 점 빼고는 함께 어울리면 항상 기분이 유쾌해져서 좋다. 서유럽 출신들은 자기주장과 요구가 분명하고 논리적이다. 시연 수업 중 셰프가 교과서의 레시피와 조금이라도 다르게 요리를 하면 대충 넘어가지 않고 바로 따져 묻는다. 깍쟁이들이 많은 편이다. 아시아 학생들은 수업 시간에 조용하고, 모르는 것이 있어도 손들고 질문하는 법이 없다. 교실 맨 앞자리에 앉는 공붓벌레들이 많다. 손놀림이 서양인들에 비해 날렵해서인지 요리 테크닉이 상대적으로 뛰어나고 섬세하다. 담배 인심도 좋고 노트도 잘 빌려준다.
배우는 것이 프랑스 요리이므로 동양보다는 서양 학생들이 유리한 경우가 많다. 치즈, 소시지, 버터, 크림을 어릴 적부터 끼니마다 먹고 자란 서양 학생들은 프랑스 요리의 적지 않은 식재료와 레시피를 이미 입학 전에 눈과 입으로 예습한 상태다. 그러니 당연히 간장, 된장 먹고 자란 아시아 학생들보다 모든 면에서 이해가 빠르다. 이를테면 시연 수업 때 ‘초리소(쇼리수) 소시지’가 식재료로 나오면 나는 퍼뜩 감이 안 온다. 생소한 모양새의 이 훈제 고깃덩어리의 제대로 된 맛이 어떤 것인지, 또 무슨 요리에 어떻게 쓰이는지 아리송하다. 반면 옆의 포르투갈 페드루는 어릴 적 할머니가 집에서 초리소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그 맛이 얼마나 끝내줬는지 두 시간은 늘어놓을 수 있다. 페드루에게 초리소는 홈메이드 순대이자 메주다. 이렇게 문화적 차이는 있어도 먹는 것에 목숨을 건다는 점에서는 우리는 전부 한통속이다. 음식 이야기만 나오면 수다가 끝이 없다. 다른 나라 음식에 대해서도 호기심이 가득 차 있다. 틈만 나면 에스닉 스타일의 레스토랑에 우르르 떼지어 몰려가 미지의 메뉴를 맛보는 모험을 즐긴다.
문화 달라도 음식에 목숨걸기는 공통점
하루는 날을 잡아 런던 시내 한식집으로 동급생들 한 무더기를 불렀다. 원래는 학교 끝나고 딱 5명만 가기로 한 것이 그날따라 다들 약속이 없었는지 눈덩어리처럼 지원자가 늘어나더니 순식간에 식객은 12명이 되었다. 그날 모인 면면들을 보면 브라질, 포르투갈, 베네수엘라, 영국, 노르웨이, 그리스, 중국, 말레이시아, 크로아티아, 헝가리, 이스라엘, 미국까지 그야말로 유엔 총회를 방불케 하는 구성이었다.
그날 놀란 사실 하나. 12명의 다국적 평가단 중 말레이시아와 중국 친구 두 사람을 빼고는 태어나서 한국 음식을 단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었다. 이럴 수가! 국내 언론과 우리 정부의 한식 세계화 팡파르 소식이 사실이라면 이미 전세계인이 한식의 매력에 폭 빠져 있어야 마땅할진대 말이다. 다른 나라 식문화에 대한 관심으로 가득한 국제적 요리학교 학생들에게조차 한식이 아직 생소하다니!(이유가 여러 가지 있겠지만 우선 그 숫자가 절대적으로 적다. 전세계 온갖 국적의 레스토랑이 모여 있는 런던에서조차 틀을 제대로 갖춘 한국 음식점은 요리의 질을 떠나 수적으로 10곳이 채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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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에 있는 한식당을 찾은 이욱정 피디와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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