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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욱정 피디가 파티스리 과정 중에 만든 화이트 롤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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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누들로드 이욱정 PD의 ‘르 코르동 블뢰’ 생존기
⑩ 퀴지니에와 파티시에…살벌한 라이벌 의식
‘르 코르동 블뢰’의 학과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프랑스 요리 전반을 배우는 퀴진과 디저트와 빵 만들기를 배우는 파티스리 과정이 그것이다. 나처럼 두 과정을 전부 수강하는 이도 있지만 한쪽만 공부하는 학생들이 대부분이고 실습교실과 담당 교수까지 전부 다르다 보니 두 학과 학생들은 졸업할 때까지 서로 말 한마디 나눌 기회가 없다. 정확히 말하면, 서로 별로 아는 척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탈의실에서 마주쳐도 마치 각기 다른 은하계에서 온 생물체들처럼, 그 흔한 “하이!”도 오가는 법이 없다.
처음에는 왜 그럴까 했다. 그런데 두 과정을 모두 수강하면서 수수께끼가 하나둘 풀리기 시작했다. 나에게 이것은 서로 판이하게 다른 문화를 가진 두 부족사회를 비교하는, 일종의 인류학 현지조사 같은 것이었는데 이들 부족들의 복잡한 정신체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작업이기도 했다. 현지조사의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두 무리 사이에는 아주 오랜, 그리고 상당히 격렬한 라이벌 의식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퀴진(요리학과) 학생들은 자신들을 빵이나 굽는 파티스리(제과제빵) 녀석들보다 우월한 계급이라고 여긴다. 이런 주방 카스트제도를 뒷받침하려는 몇 가지 자체논리가 개발되어 있었는데 우선, 자주 거론되는 것이 요리학과 교과목에는 기본적인 제과제빵 메뉴가 몇 가지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자신들은 요리도 하고 디저트도 만들 줄 알지만, 반대로 ‘그들’은 오로지 디저트밖에 만들 줄 모른다는 것이다. 3단으로 쌓아 올린 초콜릿 공예를 들고 제과제빵학과 학생들이 복도를 지나가면 요리학과 학생들이 킬킬대며 하는 소리가 있다. “저걸 어떻게 먹으라는 거야? 제과제빵은 딱 우리가 배우는 기본만 알면 충분해.”
설탕·초콜릿이나 주물럭대는 주제에…
둘째, 그들은 퀴진의 세계야말로 진짜 사나이들의 세계이자 셰프의 영토라고 믿는다. 빨간 눈을 크게 뜬 채 죽어 있는 토끼의 머리를 부처나이프(Butcher Knife·고기 자르는 큰 칼. 무게가 장난이 아니다)로 콧노래까지 부르며 단칼에 자를 수 있는 두둑한 배포와, 뜨겁게 달구어진 무쇠 프라이팬을 한 손으로 척 잡아들고 피가 뚝뚝 떨어지는 티본스테이크 덩어리를 갖고 놀 수 있는 강한 근육의 소유자만이 진정한 셰프의 자격이 있다는 것이다. 팔뚝 굵기가 내 허벅지만한 요리학과 친구 네이슨(영국 특수부대 출신이다)의 표현을 빌리자면 “설탕·초콜릿 나부랭이나 주물럭대는 파티스리는 연약한 ‘계집아이’들이나 하면 딱 맞지” 이런 식이었다. 한마디로, 오르되브르(전채요리)에서 메인(주요리)까지 책임지는 자신들이야말로 쇼의 최고 하이라이트이자 무대 위의 유일한 주연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것이다. 디저트는 요리의 대향연에서 한낱 보기 좋은 마무리용 장식이자 예쁘장한 조연 정도라고나 할까.
파티스리 부족의 반격도 만만치 않다. 먼저, 미식의 역사를 살펴보면 잘난 체하는 퀴지니에(요리사)들의 역사적 뿌리는 알고 보면 자기들 파티시에(제과제빵사)였다고 주장한다. 근대 프랑스 요리의 초석을 다진 전설적인 인물 앙투안 카렘은 원래 요리전공자가 아닌 제과제빵사였고 그의 예술적인 능력이 가장 잘 드러난 메뉴도 설탕세공이었다는 것이다. 둘째, 요리학과에서 배우는 디저트는 초보 중의 초보 수준이요, 매우 저급한 테크닉의 것으로 치부한다. 제과제빵 학생들은 퀴진 아이들이 레몬 타르트나 마들렌 등 겨우 몇 가지 디저트를, 그것도 엉망으로 만들어보고서는 감히 “나도 디저트 좀 아네” 하고 나대는 것을 못마땅해한다. 한마디로, 연기 나는 고깃덩어리가 식탁의 주인공이던 시대는 이미 끝났으며 오늘날은 손님의 눈을 사로잡는 화려한 디자인의 달콤한 디저트야말로 코스의 피날레이자 그날 요리의 최종 인상을 결정짓는 참된 종결자인 것이다. 그러므로 파티시에만이 요리를 예술의 경지로 승화시킬 수 있는 유일무이한 존재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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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프의 자격, 야성이냐 과학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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