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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피아 같은 셰프, 알고 보니 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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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들로드 이욱정 PD의 ‘르 코르동 블뢰’ 생존기
⑫ 런던의 레바논음식점에서 맛본 짜릿한 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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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들로드 이욱정 PD의 ‘르 코르동 블뢰’ 생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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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지라 런던에서도 즐겨 찾는 곳들은 대부분 매일 오가는 통학로에 있는 식당들이다. 내가 좋은 식당을 정하는 기준은 단순한데, 우선 가격이 정직해야 하고, 둘째로 음식에 자기만의 색깔이 담겨 있어야 한다. 신기하게도 서울이나 런던이나 그런 식당들은 외관과 밖에 걸린 차림표만 봐도 티가 난다. 겉보기에 손님만 북적댄다고 좋은 식당은 아니다. 식당의 안팎을 꾸며놓은 모양새와 메뉴의 짜임새를 보면 대충 주인의 내공이 느껴진다. 내가 토니를 만난 것도 그런 육감 덕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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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여인 초상에 이끌려 식당 앞 발길 멈춰
런던의 일반적인 중동음식점들을 보면, 소품을 단체구입이라도 했는지 하나같이 똑같은 페르시아풍의 양탄자와 번쩍이는 물담배, 살집이 출렁거리는 벨리댄서의 사진들로 치장돼 있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콩투아르는 모양부터 다른 중동식당들과 달랐다. 창유리 사이로 내부를 힐끗 보는데 중동풍의 하드록 카페랄까, 친근하면서도 산뜻해 보였다. 그리고 며칠 뒤 점심을 먹으러 그 식당을 찾아갔다.
먼저, 타불리(Tabbouleh)라는 이름의 샐러드를 먹어보았다. 싱싱한 파슬리와 잘게 썬 양파와 토마토, 불거(Bulgur)라는 밀알을 납작하게 눌러 말린 것을 레몬즙과 올리브유에 버무렸는데 입안이 상쾌해지는 느낌이었다. 샐러드와 함께 으깬 완두콩을 마늘과 올리브유에 개서 만든 홈모스(Hommos)가 나왔는데 새콤한 석류열매를 곁들여 맛이 기가 막혔다.(홈모스는 영국 슈퍼마켓 어디에도 있을 정도로 인기있는 레바논 음식이다.)
압권은 타진 요리였다. 타진은 점토로 만든 고깔 모양의 북아프리카의 조리도구다. 그 안에 양고기 또는 닭고기를 넣고 올리브, 살구, 건포도, 대추야자, 견과류, 향신료와 함께 오랜 시간 조리한다. 이 식당에서는 이렇게 요리한 타진을 먹기 편하게 ‘플랫 브레드’(납작한 빵)에 싸서 주었는데 양념이 잘 밴 닭고기가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데 정신을 못 차릴 정도였다. 모던한 인테리어처럼 음식 맛도 기존 중동음식점의 것과 달리 향신료 냄새가 강하지 않고 기름기가 덜했다. 전통적인 틀을 벗어난 듯하면서도 여전히 레바논 요리의 본질은 간직하고 있는 점이 훌륭했다. 그리고 10파운드 정도로 두 가지 요리를 맛볼 수 있어서 가격까지 감동이었다. 작은 샌드위치 하나가 5파운드를 넘는 런던의 고물가를 고려하면 참 고마운 가격이었다.
대체 이 감동적인 레스토랑의 주인이 누구인지 궁금했다. 방송사 피디 명함이 이럴 때는 외국에서도 요긴하다. 인터뷰를 요청했고 30분 뒤 건장한 체격의 남자가 들어왔다. 짧은 머리에, 단추를 풀어헤친 검은 셔츠 사이로 번쩍이는 금목걸이가 보였다. 아니, 저런 마피아 중간보스같이 생긴 분이 이렇게 세련되고 산뜻한 식당의 주인? 콩투아르를 만든 토니는 외모와는 달리 섬세하고 부드러운 사람이었다.
먹고 싶던 요리, 갖고 싶던 물건 모아놓았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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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들로드 이욱정 PD의 ‘르 코르동 블뢰’ 생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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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에게 물었다. “이 모든 아이디어와 메뉴들이 어디서 나온 거요?” “어렵지 않았어. 그냥 가난하던 어린 시절, 내가 먹고 싶었지만 돈이 없어 먹을 수 없었던 음식들, 갖고 싶었던 물건들, 살고 싶었던 공간의 꿈을 모아놓았을 뿐이야.” 세상의 식당 주인(또는 셰프)은 세 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사업가-범죄자-성자. 맛있는 음식을 비싸게 팔거나, 맛없는 음식을 싸게 파는 식당 주인은 사업가다. 엉터리 같은 음식을 터무니없이 비싸게 파는 것은 사기에 해당되므로 범죄에 가깝다. 반대로, 좋은 음식을 저렴한 가격에 파는 토니 같은 식당 주인은 만인에게 행복을 가져다주기에 성자의 반열에 오를 수 있을지 모른다. 큰 스승은 요리학교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글 KBS 피디(www.kbs.co.kr/cook)·사진 제공 최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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