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06.23 10:55
수정 : 2011.06.23 11:10
|
마피아 같은 셰프, 알고 보니 성자
|
누들로드 이욱정 PD의 ‘르 코르동 블뢰’ 생존기
⑫ 런던의 레바논음식점에서 맛본 짜릿한 감동
|
누들로드 이욱정 PD의 ‘르 코르동 블뢰’ 생존기
|
런던은 유럽에서 파리 다음으로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이 많은 미식의 도시다. 최고의 레스토랑에 가서 마스터 셰프의 요리를 시식하는 것이 큰 공부가 된다는 것을 모르는 요리학교 학생은 한 사람도 없지만 다들 한없이 가벼운 호주머니 사정 때문에 그런 곳들은 하늘의 별만큼이나 높은 곳에 있어 좀처럼 갈 일이 없다. 인턴이 되고자 이력서를 들고 셰프 면담을 하러 갈 때 빼놓고 말이다. 하지만 런던에는 그런 최고급 레스토랑 말고도 공부가 될 만한 좋은 식당이 골목마다 숨어 있다. 소문난 맛집 정보를 검색해서 열심히 찾아다니는 학생들도 있지만 나는 웬만한 인터넷 추천 정보는 잘 믿지 않거니와, 또 매번 가는 길도 가끔씩 잊어먹는 타고난 ‘길치’이기 때문에 발품 팔아가며 돌아다니는 법이 없다.
그런지라 런던에서도 즐겨 찾는 곳들은 대부분 매일 오가는 통학로에 있는 식당들이다. 내가 좋은 식당을 정하는 기준은 단순한데, 우선 가격이 정직해야 하고, 둘째로 음식에 자기만의 색깔이 담겨 있어야 한다. 신기하게도 서울이나 런던이나 그런 식당들은 외관과 밖에 걸린 차림표만 봐도 티가 난다. 겉보기에 손님만 북적댄다고 좋은 식당은 아니다. 식당의 안팎을 꾸며놓은 모양새와 메뉴의 짜임새를 보면 대충 주인의 내공이 느껴진다. 내가 토니를 만난 것도 그런 육감 덕분이었다.
어느 날 지하철에서 내려 학교를 가는데 갑자기 평소와 다른 길로 가고 싶어졌다.(길치들이 길을 잃는 이유 중 하나가 이런 뜬금없는 모험심 때문이다.) 큰 빌딩들 사이로 어른 한 사람이 들어가면 꽉 찰 듯 보이는 정말 좁은 골목(구멍이라고 불러도 될 만한 크기였다)이 보였다. 협로를 지나자 작은 광장이 나왔고, 건물 뒤편에 숨어 있던 카페와 레스토랑 거리가 눈앞에 펼쳐졌다. 런던이라는 도시는 여기 사는 ‘런더너’들의 뇌 구조만큼이나 예측불허의 미로들로 이어져 있다. 새로운 발견에 들떠서 학교가 있는 말리번 스트리트 쪽으로 나오는데 왼편에 한 여자의 초상을 담은 빈티지 느낌의 대형 포스터가 보였다. 살짝 웃고 있는 중동 여인의 초상이었는데 그 미소가 주는 묘한 매력 때문이었는지 발길이 멈췄다. 간판을 보자 콩투아르(Comptoir) 레바논 음식이라고 쓰여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녀는 1960년대 이집트 영화의 최고 스타 시린 자말 앗딘(Sirine Jamal al Dien)이었다.
중동 여인 초상에 이끌려 식당 앞 발길 멈춰
런던의 일반적인 중동음식점들을 보면, 소품을 단체구입이라도 했는지 하나같이 똑같은 페르시아풍의 양탄자와 번쩍이는 물담배, 살집이 출렁거리는 벨리댄서의 사진들로 치장돼 있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콩투아르는 모양부터 다른 중동식당들과 달랐다. 창유리 사이로 내부를 힐끗 보는데 중동풍의 하드록 카페랄까, 친근하면서도 산뜻해 보였다. 그리고 며칠 뒤 점심을 먹으러 그 식당을 찾아갔다.
먼저, 타불리(Tabbouleh)라는 이름의 샐러드를 먹어보았다. 싱싱한 파슬리와 잘게 썬 양파와 토마토, 불거(Bulgur)라는 밀알을 납작하게 눌러 말린 것을 레몬즙과 올리브유에 버무렸는데 입안이 상쾌해지는 느낌이었다. 샐러드와 함께 으깬 완두콩을 마늘과 올리브유에 개서 만든 홈모스(Hommos)가 나왔는데 새콤한 석류열매를 곁들여 맛이 기가 막혔다.(홈모스는 영국 슈퍼마켓 어디에도 있을 정도로 인기있는 레바논 음식이다.)
압권은 타진 요리였다. 타진은 점토로 만든 고깔 모양의 북아프리카의 조리도구다. 그 안에 양고기 또는 닭고기를 넣고 올리브, 살구, 건포도, 대추야자, 견과류, 향신료와 함께 오랜 시간 조리한다. 이 식당에서는 이렇게 요리한 타진을 먹기 편하게 ‘플랫 브레드’(납작한 빵)에 싸서 주었는데 양념이 잘 밴 닭고기가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데 정신을 못 차릴 정도였다. 모던한 인테리어처럼 음식 맛도 기존 중동음식점의 것과 달리 향신료 냄새가 강하지 않고 기름기가 덜했다. 전통적인 틀을 벗어난 듯하면서도 여전히 레바논 요리의 본질은 간직하고 있는 점이 훌륭했다. 그리고 10파운드 정도로 두 가지 요리를 맛볼 수 있어서 가격까지 감동이었다. 작은 샌드위치 하나가 5파운드를 넘는 런던의 고물가를 고려하면 참 고마운 가격이었다.
대체 이 감동적인 레스토랑의 주인이 누구인지 궁금했다. 방송사 피디 명함이 이럴 때는 외국에서도 요긴하다. 인터뷰를 요청했고 30분 뒤 건장한 체격의 남자가 들어왔다. 짧은 머리에, 단추를 풀어헤친 검은 셔츠 사이로 번쩍이는 금목걸이가 보였다. 아니, 저런 마피아 중간보스같이 생긴 분이 이렇게 세련되고 산뜻한 식당의 주인? 콩투아르를 만든 토니는 외모와는 달리 섬세하고 부드러운 사람이었다.
먹고 싶던 요리, 갖고 싶던 물건 모아놓았을 뿐
|
누들로드 이욱정 PD의 ‘르 코르동 블뢰’ 생존기
|
그는 올해 나이 42살, 레바논 사람으로 알제리에서 태어났다. 요리학교 문턱에도 가본 적이 없지만 이미 10살 때 샌드위치를 만들어 축구장 앞에서 팔기 시작했다. 18살에 영국에 놀러 왔다가 주저앉아 접시닦이부터 배웠다. 담배와 술, 노는 것과도 담쌓고 하루도 쉬지 않고 미친 듯이 주방 일을 배웠다. 22살 때 자신의 첫번째 식당(파스타와 피자를 파는 이탈리아음식점)을 열었고 돈을 모았다. 그리고 10년 전 비로소 오랜 꿈이었던 레바논 음식점을 열었다. 그가 콩투아르를 열 때만 해도 다른 중동음식점들의 주고객은 중동사람들이었다. 런더너들에게 레바논 음식은 생소하고 촌스러운 것이었다. 한때 중동의 파리라고 불릴 정도로 번창했던 레바논. 중동에서 가장 다채롭고 세련된 음식문화를 갖고 있었지만 언제나 내전국가라는 어두운 이미지의 그늘에 가려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토니는 자신의 레스토랑을 통해서 그런 오랜 편견을 바꾸고자 했다. 주방에서 수백번의 시도 끝에 메뉴를 완성했고 식당 내부의 디자인과 소품들도 직접 디자인했다. 콩투아르의 여배우 이미지도 어린 시절 열광했던 영화의 주인공이었다. 얼마 전 토니의 식당은 쟁쟁한 미슐랭 레스토랑들과 함께 <더 타임스>가 선정한 런던 최고의 식당 50위 안에 들었다. 24년 전 기차역에서 노숙하던 접시닦이 토니는 런던 노른자위 땅에 5개의 식당 체인을 소유할 정도로 잘나가는 레스토랑 사업가가 되었다.
토니에게 물었다. “이 모든 아이디어와 메뉴들이 어디서 나온 거요?” “어렵지 않았어. 그냥 가난하던 어린 시절, 내가 먹고 싶었지만 돈이 없어 먹을 수 없었던 음식들, 갖고 싶었던 물건들, 살고 싶었던 공간의 꿈을 모아놓았을 뿐이야.” 세상의 식당 주인(또는 셰프)은 세 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사업가-범죄자-성자. 맛있는 음식을 비싸게 팔거나, 맛없는 음식을 싸게 파는 식당 주인은 사업가다. 엉터리 같은 음식을 터무니없이 비싸게 파는 것은 사기에 해당되므로 범죄에 가깝다. 반대로, 좋은 음식을 저렴한 가격에 파는 토니 같은 식당 주인은 만인에게 행복을 가져다주기에 성자의 반열에 오를 수 있을지 모른다. 큰 스승은 요리학교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글 KBS 피디(www.kbs.co.kr/cook)·사진 제공 최완석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