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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9.01 14:18 수정 : 2011.09.01 16:42

요리왕국 비결? 요리학교를 봐봐

16. 한세기 훨씬 전 프랑스 요리사는 이미 예술가·장인

다국적 학생들이 모인 르 코르동 블뢰 교실에 앉아 있다 문뜩 드는 의문. 최고의 요리사를 꿈꾸는 이들은 어떤 이유로 거금의 유학비를 들여가며 왜 하필 프랑스 요리를 배우고 싶어하는 걸까. 이탈리아 요리도 있고 스페인도 훌륭한데 말이지.

지난 회에서 이탈리아 친구 티치아나에게 했던 같은 질문을 다른 나라에서 온 동료들에게도 던져보았다. “왜 프랑스 요리를 배우려 하지?” 대충 비슷한 답이 나왔다. “프랑스 요리의 다양한 테크닉은 그 누구도 못 따라가지. 난 그 테크닉을 배우러 왔어.”(헝가리 학생 아틸라) “프랑스인들은 요리를 아름답게 장식할 줄 알아. 솔직히 난 내 입맛에는 브라질 요리가 더 맛있다고 생각하지만, 브라질 요리의 프레젠테이션은 솔직히 엉망이거든. 그냥 접시 위에 아무렇게나 척척 담아주는 게 보통이지.”(브라질 학생 호세) “프랑스 요리가 모든 면에서 (서양)요리의 스탠더드라고 생각해. 좋든 싫든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프로 요리사가 되려면 프랑스 요리부터 배워야 하는 거라고 생각해.”(미국 학생 에린) 한마디로 프랑스 요리가 모든 요리의 기본이라는 인식이었다.

식재료와 맛만으론 명품대접 못 받아
주방의 세계에서 프랑스 요리가 ‘라이벌’ 이탈리아를 제치고 지존으로 대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당연히 한두 가지 이유 때문은 아닐 것이다.

먼저, 프랑스가 가진 천혜의 자연조건과 최고의 농업 환경을 생각해볼 수 있다. 프랑스 시골동네의 장터에 가도 런던의 대형마트에서도 구경할 수 없는 신선하고 질 좋은 해산물과 고기 재료가 넘친다. 판매하는 부위도 꼬리에서 내장까지 없는 게 없다. 게다가 정말 셀 수도 없이 다채로운 종류의 치즈와 버섯류가 산처럼 쌓여 있다. 그저 바라만 보고 있어도 요리할 맛이 절로 난다. 하지만 따져보면 그런 천상의 식재료 여건은 이탈리아도 마찬가지다. 요리사들 열이면 열, 볼로냐 시장의 정육점이나 팔레르모의 어물전 거리에 데려다 놓으면 디즈니랜드에 처음 온 열살배기처럼 정신 못 차린다. 단순히 식재료가 풍부하다고 해서 그 나라 음식문화가 절로 최고가 되는 것은 아니다. 섬나라 영국 사람들은 각종 해산물이 바다에 지천인데도 지난 수백년간 오직 대구(cod)로 ‘피시 앤 칩스’를 해먹을 줄밖에 몰랐다.

그럼, 프랑스 요리가 어떤 나라의 요리보다 가장 맛있기 때문에 명품대접을 받는 것일까? 그건 더 아니다. 르 코르동 블뢰 다니면서 프랑스의 식탁을 대표한다는 요리들을 이것저것 맛볼 수 있었지만 솔직히 먹고 나서 바로 와우! 감탄사가 나온 메뉴는 10접시 중 3개 정도였다. 어떤 음식이 ‘맛있다’라고 오감으로 느끼는 행위는 많은 부분이 습관이고 기억이고 문화적으로 상대적인 것이다.

그럼 뭐지? 내 생각에 프랑스가 미식 세계의 지존이 된 이유는 프랑스인들은 요리를 단순히 먹는 데 그치지 않고 진지한 사유의 대상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요리를 음악, 미술 작품과 같이 음미하고 비평하기 시작했고 요리에 대한 지식과 기술을 일찍이 표준화하고 체계화하였다. 오늘날 전세계 주방에서 통용되는 직급체계, 분업방식, 조리용어를 고안한 곳도 프랑스요, 식탁 에티켓과 서비스 매뉴얼, 근대적 레스토랑의 틀을 처음으로 만든 곳도 프랑스다. 태권도장이 전세계 어디에 있어도 ‘차렷’ ‘경례’ 구령은 한국어로 해야 하는 것처럼, 전세계 레스토랑 주방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공용어는 프랑스어다.

명성 높은 한국요리학교는 언제쯤 탄생할까
요리가 예술로 인정받으니 그것을 만드는 요리사의 대접도 달라질밖에. 셰프가 새하얀 유니폼과 왕관 같은 셰프 모자를 차려입고 홀로 나와 “오늘 식사는 어떠셨습니까?” 손님들에게 인사를 건넬 수 있게 된 것 역시 프랑스가 처음이었다. 다른 나라에서 요리사가 여전히 냄새나는 미천한 직업으로 하대받던 시절, 프랑스에서는 부와 명예를 함께 거머쥔 잘나가는 스타 셰프들이 배출되고 있었다. 한 세기도 넘는 오래전부터 프랑인들은 요리사들을 장인이자 예술가로 대접할 줄 알았다.

마지막으로 프랑스 요리가 글로벌 명품의 지위에 등극할 수 있었던 중요한 힘이 있다. 그것은 바로 르 코르동 블뢰 같은 직업 요리학교의 탄생이었다. 요리학교는 프랑스 요리의 지식과 규범을 집대성하여 안팎으로 전수했다. 그리고 학교는 그것들에게 문화적 권위를 부여했다. 이탈리아에는 최근에야 알마(ALMA) 같은 국제적 명성의 요리학교가 세워진 반면에 르 코르동 블뢰는 이미 개교 100년이 넘었다.

오늘날 뉴욕, 바르셀로나, 도쿄, 밀라노의 유명 요리학교들이 그 틀을 프랑스에서 그대로 베껴온 것은 우연이 아니다. 다른 나라에서 여전히 요리가 부엌에서 주걱으로 맞아가며 배워야 하는 도제적 ‘기술’일 때 프랑스는 이런 혁명적인 전환을 한 것이다.

르 코르동 블뢰와 같은 국제적인 요리학교는 단순히 프랑스 요리의 노하우만을 전수하는 곳이 아니다. 전세계에서 모여든 미래의 엘리트 요리사들에게 요리계의 ‘프랑스류’를 전파하는 문화의 창구이다. 이탈리아가 못하고 프랑스가 했던 것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르 코르동 블뢰 교실에 앉아 상상해본다. 온갖 인종의 요리사 지망생들이 한국인 셰프에게 우리말 용어로 비빔밥과 구절판 레시피를 배우고 장맛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이는 세계적인 명성의 한국요리학교가 탄생할 그날을.

이욱정 KBS PD(www.kbs.co.kr/c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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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누들로드 이욱정 PD의 ‘르 코르동 블뢰’ 생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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