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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10.06 15:22 수정 : 2011.10.17 16:06

누들로드 이욱정 PD의 ‘르 코르동 블뢰’ 생존기
(18)슬럼프 극복하러 페드로와 함께 무작정 포르투갈행

슬럼프가 왔다.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의욕도 체력도, 덤으로 은행 잔고까지 바닥이 났다. 날이 갈수록 등교하는 발걸음이 무거워졌고 실습수업이 두려워지기까지 했다. 단순한 향수병이 아니었다. 내 발목을 잡아 내린 것은 열등감이었다. 레벨은 중급반으로 올라갔으나 요리 실력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듯했다. 능숙한 솜씨로 요리를 완성하는 동료들을 보면 자신감은 더 없어졌다. ‘왜 난 칼질이 이 모양이지. 스테이크는 왜 아직도 매번 덜 익히거나 태워먹는 거야. 프레젠테이션(요리의 꾸밈새)도 마음에 안 들어. 난 왜 이것밖에 못하지. 나는 정말 요리사로서 재능이 없나봐. 방송국에서 일할 때는 이러지 않았는데 말이야!’

마이클 조던도 이런 심정이었을까. 엔비에이(NBA)의 전설적인 농구스타 조던이 부친을 잃은 충격으로 갑작스럽게 은퇴를 선언하고 마이너리그 야구선수로 뛴 적이 있었다. 어릴 적 농구뿐만 아니라 야구도 곧잘 했다고는 하지만 프로의 세계는 달랐다. 야구선수로서 조던은 최악이었다. ‘29타수 무안타’가 그의 첫 정규 시즌 초기 성적이었다. 결국 조던은 1년 조금 넘게 실컷 헛스윙만 하다가 엔비에이로 복귀했다.

물론 나는 방송계의 마이클 조던도 아니고, 그처럼 방송일이 허망하게 느껴져서 요리학교로 홀연 떠나온 것도 아니었다. 뜬금없이 조던에게 동병상련의 심정이 들었던 것은 한마디로 취미로 잘하는 것과 프로의 세계에서 인정받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방송국 피디 신분일 때야 어디 가서 파스타 하나만 잘해도 요리 잘한다는 칭찬이 쏟아졌지만 르 코르동 블뢰에서는 이 정도 소질로는 명함도 못 꺼냈다. 마이클 조던이 시즌 내내 안타 하나 제대로 못 때리면서 어떤 마음고생을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내 경우는 끝도 없는 의욕 상실이었다. 마음이 우울하고 불안하니 공부가 잘될 리 없었다.

포르투갈 여행은 흥겨운 슬럼프 탈출기였다. 사진 왼쪽에서 둘째가 페드로.
야구 하던 마이클 조던이 이런 심정이었을까

넙치(Lemon Sole) 요리를 만드는 날이었다. 실습실의 교수는 초급반 때 담임이었던 셰프. 프랑스 리옹에서 온 셰프는 기분이 좋을 때는 그렇게 잘 웃고 친절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의 감정리듬은 널뛰기 증시같이 업앤다운이 심했다.(예측불허의 감정 변화가 프랑스 셰프의 일반적인 특징이기는 하다.) 하필 그날 셰프의 감정지수는 폭락장이었다. 실습수업 시작부터 조짐이 안 좋았다. 몇몇 학생이 5분 정도 지각을 해서 수업 시작이 조금 지연되었다. 고작 5분이었는데 셰프의 얼굴은 확 일그러졌다. “이번 시간 메뉴들은 다른 때보다 조리 시간이 더 오래 걸린단 말이야. 그런데 지각을 해! 오늘은 무조건 시간 내에 한 명도 빠짐없이 요리를 끝낸다.” 그의 눈은 시베리아 늑대처럼 이글거리며 사냥감을 찾고 있었다. 누구든지 그날 걸리기만 하면 껍질째로 삼켜버릴 기세였다.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도 모르겠다. 정신없이 주방을 뛰어다니다 시계를 보니 ‘이런!’ 벌써 마감 5분 전이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다른 학생들은 이미 검사를 마치고 짐을 싸고 있었다. 문밖에는 다음 실습을 할 학생들까지 바글거리는데 나만 혼자 아직 소스도 다 못 만든 상태였다. 등 뒤에서는 굶주린 맹수의 씩씩거리는 콧김이 느껴졌다. 드디어 데드라인을 15분 넘기자 셰프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요리가 다 되었든 말든 당장 가지고 와! 너 때문에 오늘 내 수업은 다 망쳤어!” 그날 내 자존심은 동기생들 앞에서 머리에서 꼬리까지 부위별로 해체되었고 슬럼프의 늪은 더 깊어져만 갔다.

자존심마저 산산이 부서진 뒤 결심했다, 떠나기로

탈출구가 필요했다. 무작정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학교로부터 되도록 멀리 도망가고 싶었다. 이곳저곳 행선지를 고민하고 있는데 포르투갈 동기생 페드로가 대뜸 제안을 해왔다. “포르투갈 음식이 궁금하다고 했지? 우리 집에 와서 며칠 있다 가지그래.” 포르투갈이라! 으흠, 지난겨울 포르투갈 패거리들의 파티에 갔던 기억이 났다. 그날 나온 음식은 버터에 튀긴 돼지갈비에 라드(돼지기름)와 설탕을 뿌려 만든 푸딩이었는데 포르투갈 와인을 곁들이자 맛이 좋았다.(지방 함량은 상상을 초월한 것이었지만.) 특히 그날 페드로는 할머니가 직접 만드신 것이라고 하면서 커다란 수제 소시지를 종류대로 내왔는데 맛이 기가 막혔다. 그때부터 이베리아반도 서쪽에 자리한 이 나라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기 시작하던 차였다.

여행지를 고를 때 나의 기준은 매우 단순하다. 아무리 자연경관과 역사유적이 빼어나도 그 나라 음식이 시원치 않으면 리스트에서 한참 뒤로 밀린다. 반대로 먹을거리가 풍부한 나라는 언제나 일순위다.

그런 까닭에 페드로의 제안에는 망설일 것 없이 바로 답이 나왔다. “오케이, 좋아 가자! 그런데 너희 집이 어디인데, 리스본이야?” “아니. 우리 집은 시골이야. 포르투게라고 스페인 국경지대에 있는 작은 도시야. 우리 일가친척이 다 모여 살고 있어.” 르 코르동 블뢰 학생들은 나를 포함해서 열이면 아홉이 대도시 출신이다. 다른 포르투갈 친구들 역시 대부분 수도 리스본에서 왔다. 페드로 같은 ‘촌사람’은 정말 찾아보기 어려운 편인지라 더 관심이 갔다.

누들로드 이욱정 PD의 ‘르 코르동 블뢰’ 생존기
페드로는 외모도 특이했다. 얼굴과 몸집이 어찌나 갸름하고 길쭉한지 모딜리아니의 여인 초상화를 보는 것 같았다.(함께 서서 사진을 찍으면 내 얼굴이 2배로 크게 보여 무척 손해다.) 그러면서도 목소리는 우렁차고 성격은 활달하고 남자다웠다. 고기 요리를 잘했는데 돼지족발을 다듬을 때 보면 그렇게 손이 빠르고 능숙할 수가 없었다. 포르투갈이라는 나라도 궁금했지만 촌놈 페드로의 뿌리가 더 궁금했다. 그렇게 여행이 시작되었다.(19회에서 계속)

글 KBS PD(www.kbs.co.kr/cook)·사진 제공 최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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